3년만의 휴가 여행. 이런 저런 사정으로 미리 서둘러 잡지도 못했는데, 우째 우째 해서 간신히 거제도로 가는 패키지 버스 투어 끝자리를 잡았습니다. 따로 숙소를 잡을 필요도 없고 운전할 일도 없으니 어떻게 보면 부담 없이 떠난 여행이었지요. 그렇게 버스를 타고 다섯 시간 정도 걸려 난생 처음 거제도에 도착했습니다.
단체로 행동하는 여섯 시까지는 여행사에서 정한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고, 단체로 가서 밥을 먹어야 했지요. 대신 저녁은 자유 시간. 식사도 자유 식사입니다. 첫 날 숙소는 옥포에 있는 비즈니스 모텔이었는데요 옥포는 거대한 조선소로 유명한 곳이군요. 지나가면서 본 조선소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더군요.
숙소에 짐을 풀고 드디어 저녁 시간. 누구나 여행지에 오면 여행지만의 맛집을 찾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특별한 준비도 없이 달랑 버스를 타고 내려 왔으니 맛집을 찾을 도리가 있어야지요. 아무래도 섬에 왔으니 회를 싫어하는 저로서도 가족들을 위해 회집을 찾을 수 밖에요.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얼굴에 철판 깔고 지역 주민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지역 주민이 누구겠어요. 자연스럽게 모텔 프런트에 가서 근처에 괜찮은 횟집이 있냐고 물어봤습니다.
거제도가 일본하고 가까워 일본 관광객이 많이 오는가 봅니다. 모텔에서 직접 만든 것으로 보이는 일본어가 적힌 약도를 주면서 어떤 횟집을 찾아 가라고 알려주더군요. 조금 비싸지만, 속이지 않고(!) 맛있는 집이다, 라고 하면서요. 아직도 관광객한테 속이는 집이 있나, 그런 씁스레한 마음을 품고 알려준 집을 찾아 갔는데, 이게 웬걸. 불이 꺼져 있었습니다. 휴가라도 간 듯 식당이 문을 닫았던 거지요. 그런데 외려 모텔에 있는 분한테 믿음이 가는 거 아니겠어요. 문 닫은 지도 모르고 추천해 줬으니 어떤 관계가 있어 알려준 것은 아니라는 거겠지요. 기분은 좋아졌습니다만(!) 이젠 그럼 어딜 가야 하나, 방황이 시작되었습니다.
지역 주민에게 물어보는 것 말고 맛집을 찾는 두 번째 공식은 사람 많은 곳을 가야 한다는 겁니다. 겉에서 보아서는 사람 많은지 알 수 없으니 주차장에 차가 많은지, 식당 앞에 신발이 많은지 확인하라는 얘기도 있지요. 모텔에서 알려준 집을 찾기 위해 가던 도중 몇 개 횟집을 보긴 했으니 그 중에서 사람 많은 집에 들어가자고 가족들과 잠정적으로(!) 합의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연히 어떤 횟집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식당 앞에 신발이 제일 많더군요 ^^. 들어가서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보니 생전 처음 보는 회 이름이 제일 위에 적혀 있었습니다. '뽈락'이랍니다.
회를 좋아하지도 않는 저인데다가 '뽈락'이라는 해괴한(!) 이름의 회를 보았으니 어디 이걸 시켜볼 마음이 생겨야지요. 그냥 모듬회나 시키자 그러다가, 손해 볼 거 없는데 뽈락이 뭔지 물어나 보자 뭐 이렇게 분위기가 흘러 갔습니다. 주문 받으러 온 분에게 뽈락이 뭐냐고 물었더니 경상도 분이라 그런지 대답이 참 간단했습니다. 요약하면 이겁니다. 뽈락이라는 물고기가 있다. 모듬회와 달리 이 넘은 자연산이다. 먹어본 사람들이 다 맛있다고 한다.
어차피 세 식구 먹어봐야 많이 먹을 것도 아니니, 그럼 뽈락 작은 것으로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5만원이면 횟집에서 먹는 것 치고는 그리 비싸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구요. 설령 마음에 안 든다 해도 관광지에 와서 공부한 셈 치자 그런 마음도 없지 않았습니다.
다른 횟집들처럼 이런 저런 곁 음식들이 나옵니다. 특별한 건 없지만 아무래도 섬이니까 다양한 해산물이 나오는데 상태가 꽤 좋던걸요. 얼핏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면 게, 소라, 멍게, 개불 거기다가 껍데기에 붙어 있는 전복 내장(!) 등등을 내 줍니다. 전복 내장을 가져다 주면서 특별히 몸에 좋으니 꼭 챙겨 먹으라는 얘기까지 합니다. 전복 내장이 만만찮게 비리다는 걸 이미 경험해 알고 있어서 쉽진 않았지만 맥주 한 잔과 함께 그냥 집어 삼켰습니다.
여튼, 푸짐하지는 않지만 깔끔하고 신선한 곁음식들로 이미 배가 부르기 시작한 저희 앞에 드딩 뽈락이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어랏? 접시 가득 담긴 뽈락 회는 이해하겠는데 묵은지 씻은 것과 초밥처럼 번지르르하게 지은 밥이 같이 옵니다. 대충 함께 싸 먹으라는 얘긴가 보다 눈치는 챘지만 살짝 당황(!) 했지요. 어떻게 먹느냐고 물어봤더니 역시 싸 먹으랍니다. ^^
회는 좋아하지 않지만 김치와 밥을 무척 좋아하는 저니까 입맛이 살짝 당기던걸요. 그래서 김치를 펴고 밥을 깔고 뽈락 회를 올려 싸 먹었습니다. 헉~ 제가 싫어하는 회의 물컹 물컹한 느낌은 하나도 없고 밥의 고소함과 김치의 새콤함 그리고 뽈락의 쫀득함이 어우러져 입 안 가득 특별한 맛이 퍼지는 것이었습니다. 가족들 모두 깜짝 놀랐다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맛있다 하면서 연신 뽈락 회를 싸 먹었습니다. 이게 싸 먹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따로 따로 먹어 보았는데 확실히 밥은 고소하게 볶고 간을 해 두었더군요. 김치 맛이야 누구나 다 연상할 수 있을 테고, 뽈락 회는 기껏해야 광어나 우럭회 정도나 먹어본 저에게 새로운 경지(!)를 알려주더군요. 물컹하지 않고 쫀득하며 씹히는 느낌이 전혀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곁 음식을 많이 먹어 배가 적당히 부른 상태였는데도 적지 않는 뽈락 한 접시가 그냥 사라지더군요. 이 맛이 정말 좋았던지 휴가 여행 내내 가족들은 뽈락 회가 더 먹고 싶다고 얘기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서울 와서 뽈락이 뭔가 찾아 봤습니다. 남해안에서 낚시로나 잡히는 물고기라는 군요. 남해안 사시는 분들이나 낚시 좋아하시는 분들은 잘 아는 물고기인가 봅니다. 가만 보니 회로 먹기도 하고 구워 먹기도 하네요. 다음 번에 뽈락을 취급하는 식당에 가면 둘 다 먹어봐야겠습니다.
누구 뽈락에 대해 잘 아시는 분 있으면 댓글이나 트랙백으로 좀 알려 주세요. 아무래도 제가 알아낸 건 너무 단편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거제도는 멍게비빕밥이 난리도 아닙니다. 방송에도 몇 번 나서 그런지 하다 못해 김밥 파는 분식집에서도 멍게비빕밥 한다고 써 붙여 놨더군요. 시간이 애매하고 일정이 안 맞아서 저희는 결국 멍게비빕밥 못 먹고 왔는데, 먹어본 다른 가족들이 별로 맛 없었다고 하시던걸요. 아무래도 잘 하는 집을 찾아가지 못해서 그랬던가 봅니다.
제가 뽈락에 너무 감동을 받고 나서 ^^ 서울에 와서도 뽈락이라는 회를 아느냐고 여기 저기 물었는데 아는 분이 거의 없더군요. 아마 그 쪽 지역 출신이신 분들은 잘 아실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분들은 거의 접해 보지 않은 회인 듯 싶습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이런 말 잘 안하지만,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거제도 가시면 꼭 뽈락 한 번 드셔 보세요. 회를 싫어하시는 분들도 정말 맛나게 드실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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