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깎이에 대한 추억

쇼핑 하는 즐거움 2007/01/09 20:46 Posted by '레이'

엄마는 연필을 잘 깎으셨다. 내가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 내 필통엔 항상 가지런히 깎인 연필 대여섯 자루가 들어 있었다. 연필깎이를 쓰지 않고도, 어쩜 그렇게 엄마는 연필을 가지런히 깎으셨던지.

까만 플라스틱 손잡이, 반달 모양의 홈에서 칼날을 끄집어 내던 연필깎이 칼. 그 칼 하나만 있으면 뭉툭한 연필은 엄마 손을 거쳐 뾰족하고 예쁜 모양으로 변해 버렸다.

그렇게 깔끔하게 깎인 연필이 든 필통은 - 몇 학년 때이던가 어떤 담임 선생이 정말 잘 깎으시네 했던 얘기완 상관 없이 - 어린 나에게 적지 않은 자랑 거리였다. 그렇게 엄마는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기 까지 6년, 2년 터울인 내 동생이 중학교에 들어갈 때 까지 2년을 더 보태 총 8년을 자식들의 연필을 깎아주셨다.

연필깎이가 흔하지 않았던 탓도 있고 엄마의 솜씨가 너무 좋아서일까. 난 스스로 연필을 깎아본 기억이 별로 없고 아직도 연필을 깎는 일엔 서투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필깎는 일에 도전해 보지 않았던 건 아니다. 나름대로 칼을 들고 연필을 깎아 보려 했고, 어떤 땐 손에 자그만 상처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깎은 연필은 울퉁 불퉁 모양도 비뚤어지고 연필심조차도 제대로 다듬지 못해 제대로 쓸 수 조차 없었다.

또 그 무렵 유행했던 알록달록 색깔의 조악한 간이 연필깎이를 몰래 사다가 연필을 빙빙 돌려 가며 깎아봤지만 그 역시 실패. 왜 그렇게 연필심은 잘 부러져야만 했는지. 결국 난 조악한 연필깎이에 대한 안좋은 추억만 남긴 채 연필깎는 걸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뒤로 이십년을 훌쩍 넘긴 지금, 공부가 아니라 업무를 위해 연필을 잡아든 나는 연필이라는 필기구가 주는 묘한 향수엔 빠져들었지만 연필깎는 일에 대한 두려움 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시내의 대형 문구 매장에서 연필 한 더즌을 골라 들었을 때 연필깍이를 찾은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지도 모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쓰는 연필과 같은 회사에서 나온 바로 이 넘. 조악한 간이 연필깎이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에도 불구하고 기계식 연필깎이의 가격이 너무 비싸 2차 대안으로선택한 넘. 3,200원의 가격에 만족하며 집어든 넘. 그러나 연필을 처음 깎는 순간 선입견은 눈 녹듯 사라졌다.

어스럭 어스럭 연필을 서너 바퀴 돌리다 헛도는 듯한 느낌이 들어 꺼낸 연필은 기계식 연필깎이에 부럽지 않을 정도로 단정한 모양새를 갖추었다. 더욱이 연필깎는 구멍은 두개. 하나는 그냥 연필에 걸맞게 길게, 하나는 색연필에 걸맞게 짧게... 연필과 스타일에 맞춰 깎아주면 된다.

디지털로 가득한 세상. 가끔 아날로그가 주목받은 건, 아날로그 나름대로 아련한 향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테고, 그것만큼은 디지털이 흉내내기 어렵기 때문일게다. 디지털로 글쓰기에 익숙한 요즘, 연필과 연필깎이를 조물락 만지면서 나는 그 향수에 잠시나마 빠져들기를 즐겨한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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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필을 깍으면서

    Tracked from 자존심지키기  삭제

    1. 연필을 깍고 있노라면, 21세기도 이제 10%나 지나가는 시점에 내가 "연필"을 깍고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그러면서 어릴 때 생각이 나더라고요. 국민학교(초등학교) 1학년 때, 엄마는 칼 만지면 다친다시면서 연필을 깍아주셨습니다. 대여섯 자루를 뾰족하게 깍아주시면, 필통에 넣어서 학교가서 뭉뚝해질때까지 쓰곤 했죠. 그러다가 바닥에 떨어뜨리기도 일수였는데, 그 때마다 뭉뚝한 연필로 공책에 글을 쓰면 글씨 쓰기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얼마가..

    2008/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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