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칠순

사랑하며 사는 삶 2008/03/17 01:32 Posted by '레이'
지난 토요일, 아버지의 칠순 잔치가 있었습니다. 사실 칠순 잔치라고 할 것도 없네요. 가족들과 친구 분 몇 분 정도 오셔서 식사하는 자리였으니 말입니다.

요즘은 잔치 잘 안한다고 하지만, 사실 칠순 잔치로는 고민을 좀 했더랬습니다. 여동생 결혼과 회갑이 겹치는 통에 회갑 잔치를 못하고 지내온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저로서는, 칠순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잔치를 해드리곘다고 마음 먹고 있었거든요. 회갑연 같은 걸 누가 하냐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안 할려고 했던 것과 다른 일 때문에 못했던 것은 또 차이가 있는 법이니까요.

그런데 정작 칠순 잔치를 하겠다고 했더니 아버지께서 스스로 반대를 하셨습니다. 요즘은 칠순 한다고 사람 모으면 욕 먹는다 뭐 이런 논리셨지요. 그래서 이런 저런 절충을 하다 보니 결국은 큰 집 식구들과 가까운 이웃 몇 분, 그리고 친구 분 몇 분 정도를 초대해 식사를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그래서 30명을 예약하는 걸로 칠순 준비는 끝났습니다.

그리고 바쁘다는 핑계로 별로 신경 못 쓰다가 드디어 칠순 날이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식구끼리만 식사를 한다고 해도 화환은 하나 있어야 할 것 같더군요. 마침 회사에서 나오는 경조사 비용을 돌려 화환을 하나 주문해 놨습니다. 인터넷 쇼핑이 발달하면서 화환 값도 내려갔더군요. 예전에는 12-3만원은 줘야 할 수 있는 화환을 7만원대에 해결했습니다. 뭐, 중국산 재료로 만들어서 싸졌다는 의견들도 있긴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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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날 아침 화환이 잘 배달되었다고 문자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조금 서둘러 예약한 부페 식당에 갔는데 화환이 없는 겁니다. 부랴부랴 꽃집에 전화하고, 식당에 물어봤더니 화환은 잘 도착했다는 겁니다. 어디에 있냐고 했더니 식당 지배인 쯤 되는 양반이 자랑스럽게 밑에 갔다 놨다는군요. 어디요? 하고 가봤더니 젠장, 또다른 칠순 집 자리에 떠억 가져다 놨더군요. 마침 칠순하는 집이 두 집이 있었는데 그 집은 100명 예약이고 저희는 30명 예약. 그러다 보니 칠순 인사말만 보고 그 집으로 가져다 놓은 모양이었습니다.

우리 쪽으로 옮겨 놓고 좀 황당했죠. 받는 사람 이름까지 명확하게 지정했는데, 그리고 식당에 사전 전화까지 해 놨었는데 이름도 확인하지 않고 칠순 잔치라니까 예약 규모가 큰 집으로 옮겨놨다니... 여튼 잘 뺏어 왔습니다. ^^

손님들 오시고, 그렇게 식사 자리가 이어지고, 모처럼 만난 친구분들과 아버지께선 적당히 소주를 즐기셨습니다. 엉겁결에 저도 두어잔 받아 먹고... 그렇게 잔치는 조촐하게 끝이 났습니다. 손님들을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가족들은 모두 아버지께 큰 절을 올리는 걸로 칠순이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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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이 해드리고 싶었는데, 이렇게 지나고 나니 참 서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지금껏 잔 병 치레도 한 번 안 하시고 건강하게 살아 오신 아버지께 고마운 마음도 들고요. 저 예전에 건강검진 했는데, 그 때 제 생활 습관 얘기를 다 듣고 난 의사 선생님 왈, 그렇게 술 마시고도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건강한 신체를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라고 하더라고요.

아버지. 베풀어 주신 만큼 갚아도 시원찮을 판에, 아직도 제게 베풀어주시기만 하시지요. 못난 아들, 해드릴 것도 없으면서 그냥 건강하시기만을 바라고 있네요. 부디 더욱 건강하시기를. 나이가 들면서 참 쑥쓰럽긴 하지만, 여기서라도 이렇게 말씀드리게 됐네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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