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배는 남자의 나이와 비례하고, 그만큼 인생을 살아온 경륜을 내포하는 것(!)이라고 아무리 스스로를 위로해도, 이젠 더 이상 주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넉넉했던 34인치 바지의 여유가 슬슬 없어져가고, 조금만 달려도 숨을 헐떡이고, 몸이 무겁다는 게 점점 더 많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자존심을 포기하고 36인치 바지를 사 입으면(으악!) 편안하고 널널하게 입을 수 있겠지만. 더 이상 그럴 수는 없다. 나에게 있어 34인치란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인 셈이다. 그리고 최근에 잰 몸무게는, 뺄거 다 뺀 상태에서도 80.5kg. 무슨 일이 있어도 80은 넘기지 말자고 했는데 스물 스물 넘어버리고 말았다.
이래서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운동을 하기엔 최악의 조건인 겨울이 시작되는 걸 알면서도 운동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원래 자전거를 좋아하니까 밤마다 자전거를 타면 되는데, 이게 또 말처럼 쉽지 않다. 자전거는 탈 때는 좋지만 타기 전까지 넘어야 할 큰 벽이 하나 있다. 바로 자전거를 끌고 나가야 한다는 한없는 귀찮음이다. 오랫동안 타지 않은 자전거가 혹시 바람이라도 빠져 있다면, 그건 아주 좋은 핑계 거리다. 에이, 토요일에 바람 넣고 타자. 이렇게 또 운동을 포기하고 만다. 게다가 겨울엔, 자전거 열 춥다!
그래서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걷기’다. 다행스럽게도 사무실 주변은 걷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고, 집과 사무실도 5km 밖에 되지 않아서 마음 먹고 걸으면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다. 일단 점심 먹고 무조건 걷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걸어서 퇴근하면 귀찮음을 극복하고 나름대로 운동을 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 섰다. 겨울이라 춥긴 하지만 단단히 싸 매고 가면 되겠지. 뭐 어떻게든 시작이라도 해보는 거야.
근데 참 남자들이란 웃기다. 그냥 나가서 걸으면 되는데 꼭 뭔가 핑계 거리를 하나 물고 들어간다. 기왕 걷는 거 효과를 잘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뭐 이런 꽁수를 찾는다는 거다. 그렇게 내 나름대로 찾은 꽁수가 바로 마사이족 워킹 신발이다. 마사이 족의 꼿꼿한 보행 방식을 배워 걸으면 몸에도 좋고 살도 잘 빠진다나(이건 순전 내 생각이다 ㅋㅋ) 어쩐다나 뭐 그런 얘기다. 이것도 나름 브랜드가 몇 개 있는데, 사무실 근처에 매장이 있는 국산 브랜드 중 하나를 골랐다.
이거 엄마들 신는 효도신발 처럼 생겨 사실 뽀대는 별로 안 나는데, 여튼 이 신발의 특징은 이렇게 생겨먹은 밑칭이다. 이 밑창을 이용해 발 뒤꿈치부터 내딛기 시작해서 순서대로 발을 땅에 대며 걸으란다. 걷는 것이 영 어색하긴 한데, 좀 빨리 걷다 보니 알아서 그렇게 되는 것도 같다. 좋은 점도 있다. 밑창이 높아서 키가 훨씬 커 보인다. 키 높이 효과가 있다는 말이다. 세상에, 요만큼 올라갔다고 공기가 다 다르네!
일단 신어 보고 효과를 보면 두루두루 선물해 주겠다고 사무실 식구들한테도 큰 소리를 쳤다. 대신 내가 효과를 못 보면 신발 값은 당신들이 공동으로 물어내라(!)고 했더니, 아무도 대답을 안 한다. 생기는 것들이 있으려면 투자를 해야 할 것 아냐! ㅋㅋ 내가 생각해도 해괴한 논리지만 우기면 또 그럴 듯 하지 않은가?
어쨌든 오늘 저녁부터 시작이다. 첫 날부터 무리해서 집까지 걸으면 좀 무리가 될 듯 하니, 일단 사무실 근처 석촌호수를 한 바퀴 정도만 돌을까 한다. 여기도 한 2km 정도는 될 듯. 뭐 걷다가 기분 좋으면 집까지 가고, 그러다 기분 좋으면 하늘까지도 가겠지. 다른 건 몰라도 이번 겨울에 꼭 5kg만 빼면 신발 값이 하나도 아깝지 않겠다.
1. 내 평소 행태상, 이거 대강 하면 틀림없이 몇 번 하다 집어칠 것이 뻔해, 동네 방네 소문을 내기로 작정했다
2. 블로그에도 아예 카테고리를 하나 만들고 걷기 운동에 대한 일기 같은 걸 써 볼 생각이다. 카테고리 이름 멋지다. 걸어서 하늘까지.
3. 잘 되면, 걸어서 살 뺀 다이어트 기록이 될 테고 안 되면, 어느 순간 몰래 사라질 카테고리가 되겠다.
4. 신발 사 놓고 나니, 걷기도 전에 GPS로그 기능이 있는 시계를 사고 싶어 벌써 검색 하고 생 난리다. 시계는 걷고 나서나 사야 되겠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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