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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다시 보기'에 해당되는 글 70건

  1. 2009/12/08 사랑은 어쩔 수 없는 역설이다 - 뉴문 (6)
  2. 2009/11/26 청이야기, 인생은 돌고 돌아 슬프지만, 그러나... (6)
  3. 2009/10/26 위장전입, 전형적인 소탐대실이라고요? (1)
  4. 2009/09/14 지나치게 잘 포장된 책 - 창조 바이러스 H2C (4)
  5. 2009/09/03 논쟁? 사랑이란 원래 다 그런 거잖아?!
  6. 2009/08/17 [책] 딸에게 전하는 12가지 부의 비법 (6)
  7. 2009/08/17 [책] 딸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 이유 (2)
  8. 2009/06/29 시리즈를 읽는 즐거움, 그러나! (8)
  9. 2009/06/17 [릴레이] 레이의 독서론. 나는 왜 책을 읽는가 (9)
  10. 2009/05/31 흐린 날, 첼로가 마음을 적신다 (3)
  11. 2009/05/31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서서 (2)
  12. 2009/04/20 [책] 13계단, 인간은 인간을 심판할 권리가 있는 것일까 (13)
  13. 2009/04/07 [책] 천사의 나이프 - 모순, 책임 그리고 인간의 조건 (8)
  14. 2009/04/06 쟝 그르니에, 섬 - 20년전 감성을 찾아 떠나다 (9)
  15. 2009/03/17 [독서일기] 핫트렌드 2009, 트렌드가 궁금해? (4)
  16. 2009/03/16 [독서일기] 파리대왕, 깊은 의미에 길을 잃다 (12)
  17. 2009/03/08 [영화] 지구, 그 안에 담긴 생명에 경외를 (8)
  18. 2009/03/05 [독서일기] 고도를 기다리며 (6)
  19. 2009/03/02 [책] 호밀밭의 파수꾼 (17)
  20. 2009/02/23 2009 책 읽기의 목표, 명작에 도전하다 (26)
  21. 2009/02/17 [책] 그라운드스웰, 참여하고 즐겨라 (14)
  22. 2009/02/10 [책] 용의자 X의 헌신 - 히가시노 게이고 (10)
  23. 2009/02/08 [책] 옛날에 내가 죽은 집 - 히가시노 게이고 (14)
  24. 2009/01/08 [영화] 쌍화점, 질투와 광기에 묻힌 러브스토리 (15)
  25. 2009/01/07 [책] 천사들의 제국, 내게도 수호천사가 있을까 (4)
  26. 2009/01/06 [책] 타나토노트, 죽음 뒤엔 어떤 세계가 있을까 (4)
  27. 2008/12/29 [공연] 마리오네트, 애잔함 위에 피어난 열정 (5)
  28. 2008/12/26 [책] 신 - 나도 언젠가는 신이 될 수 있을까 (8)
  29. 2008/12/22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다 - 뉴보잉보잉 (10)
  30. 2008/12/15 [영화] 트와일라잇, 영원하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14)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러브 스토리, 트와일라잇. 소재는 독특했으나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니었다. 뱀파이어 영화에 러브 스토리라니. 내게 있어서 이건 마치 우유에 밥 말아 먹는 그런 느낌 같은 거다(이런 종류의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죄송!). 트와일라잇에 대해 그냥 이런 기억만 있는 내게 난데없이 딸 아이가 트와일라잇을 보고 싶다기에, 재미없어~ 그러면서 눙치고 지나가려 했더니 책을 사 달란다. 응? 이게 책이 있다고? 알고 봤더니 4권짜리 장편소설이다. 아이고야. 그러고 나서 트와일라잇의 속편이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뉴문’이란다.


첫 영화에 대한 기억이 특별하지 않았으므로 속편을 볼 리가 없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말았다. 일요일 오후, 딸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컴퓨터를 이용해 프로젝트 숙제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난(!) 것이다. 서너 시간 보낼 만한 곳이 어디 있겠나. 그래서 찾은 곳이 잠실 롯데시네마다. 아무리 사람 많은 주말에도 표를 구할 수 있다는 그 영화관.

역시 영화는 여전히 내 취향이 아니다. 호러도, 액션도 아닌 멜로에 나는 지루했고, 옆 자리에서 쉴 새 없이 떠드는 젊은 연인들 때문에 영화에 집중하기도 어려웠다. 사실 이 연인들에 대해서는 한마디 하고 싶지만, 영화 끝나고 나오는데 아내가 흘린 목도리를 찾아다 주는 선행을 베푼 까닭에, 그냥 다 용서하기로 했다. ^^

하여튼, 영화는 여전히 사랑의 역설을 다룬다. 사랑하지만 함께 갈 수 없다, 사랑하기에 같이할 수 없다는 사랑의 역설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주인공과 관객들은 그 역설에 때론 공감하고 때론 거부하며 어쩔 수 없이 스토리를 따라간다. 에드워드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벨라의 곁을 떠나고 벨라 역시 사랑한다는 이유로 뱀파이어가 되고 싶어 한다. 과연 진정한 사랑은 뭘까. 정말 서로 사랑한다면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줘야 하는 걸까? 아니면 사랑은 기복이 심한 일시적인 감정이므로 후회하지 않도록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하는 걸까.

어쩌면 애당초 사랑은 운명이어서 내가 선택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까닭에 사람들은 상대를 아프게 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 행동이 오히려 상대를 더 아프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결국,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주어야 할까. 그것이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이기에.

영화는, 사랑한다면 원하는 대로 하라고 말한다. 결론은 똑같으니 어차피 돌아가지 말라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역시 사람이든 뱀파이어든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닌가 보다. 어쩌면 돌고 도는 것이 사랑의 속성일지도 모른다. 한 방에 쭉 가면 그건 사랑이 아니잖아요, 소개팅이지~ 라고 우스개를 던지며 위로해 봐도, 사랑이 쉽지 않은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물론 사랑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도 질러보고 싶다. 사랑한다면 원하는 대로 하라. 더는 서로 상처받지 않도록./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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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다시 본다는 건, 어릴 적 기억 속을 되살려 본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개 고전이란 이름이 붙을 수 있는 것들은 읽는 사람의 나이, 환경 등에 따라서 느낌이 많이 다르니까요. 제가 요즘 헤르만헤세의 데미안, 수레바퀴아래서, 싯다르타 등을 다시 읽는 건 대학생 때 읽었던 느낌과 전혀 다른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고전을 다시 읽는 것도 즐겁지만 그 고전을 새롭게 각색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건 또 다른 행운입니다. 고전을 새로운 각도에서 해석한다는 건 굉장히 신선한 시도니까요.


우연한 기회에 마지막 공연의 VIP 티켓을 받은 건 정말 큰 행운이었습니다. 게다가 공연 장소는 우리나라에서 뮤지컬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몇 안되는 극장 중 하나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마지막 공연이라 배우들의 연기는 물오를 대로 올랐을 테고, 마지막 회라는 특징 답게 평소보다 더 열심히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까지 갖게 되니(그런 까닭에 원래 뮤지컬 마지막 공연들은 항상 매진이 되곤 합니다.)  저로서는 이미 공연을 즐길 준비가 충분히 된 거지요.


뮤지컬 청이야기는 심청전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새롭게 각색한 뮤지컬입니다. 원작은 해피엔딩이지만 안타깝게도 청이야기는 비극이지요. 물론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라는 방대한 주제로 놓고 보자면 우리 인생이란 다 해피엔딩이겠지만, 어쨌든 헐리우드 스타일의 해피엔딩은 아니라서 공연을 다 보고 난 후 어쩐지 무거운 마음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을 겁니다.

청이야기의 청은, 선원들의 빨래를 해주며 눈먼 아버지와 사는 착한 소녀입니다. 은근히 청이를 사랑하는 덕이와 정이 많은 덕이 엄마를 이웃으로 두고(뺑덕 어미의 재해석이란! ^^) 넉넉하진 않지만 즐겁게 살아갑니다. 마침 청이가 빨래를 담당하던 배는 중앙 정부에서 쫓겨난 왕자님의 배. 당연히 청이와 왕자님은 묘한 관계를 이어갑니다. 그러다가 동네 양아치의 속임수에 빠진 아버지 때문에 청이는 왕자님의 배가 인당수를 지날 때 험한 파도를 잠재울 제물이 되고 결국 인당수로 뛰어드나 왕자님이 청을 구해냅니다. 그리고 왕자는 자기 나라로 돌아가나, 그 곳에서 왕자를 기다리는 건, 험한 정치 싸움, 과연 왕자는 쿠데타를 이겨내고 청이와 사랑을 완성할 수 있을까요(앞에서 비극이라 해 놓고, 이렇게 마무리를 하는 건 무슨 심보일까요. 에휴 ^^).

연출가의 말을 빌리면 심청전은 지극히 동양적이고, 뮤지컬은 지극히 서양적입니다. 동양과 서양의 분위기를 조화롭게 만들고 전혀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고 그런 시도들이 관객들에게 틀림없이 기쁨을 주었을 겁니다. 청이야기 역시 동양과 서양의 느낌을 조화하면서 거기에 현대적인 감각까지 보태야 했으니 쉽지 않은 노력이 들어갔을 테고, 그만큼 관객은 새로운 공연을 즐길 수 있습니다.

쉬는 시간까지 포함해 두시간 삼십분의 공연은 금새 지나갑니다. 화려한 무대, 실감나는 음악과 와이어 액션까지 선보이는 배우들의 연기에 관객은 쉽게 몰입합니다. 젊고 매력적인 배우들의 무대는 그들의 젊음이 마냥 부럽다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이미 몇몇 뮤지컬들을 거치면서 나름대로 내공을 쌓은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 모두 박수를 보낼만 합니다.

비극은 감정의 카타르시스라고 하지만(사실 청이야기의 마지막 주제가 인생은 돌고 도는 것, 이어서 딱히 눈물을 흘릴 비극이라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 공연을 마친 배우들에게는 좀 손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커튼콜이 시작되고 배우들이 인사를 하지만 여전히 기립 박수에 어색한 우리 관중들은 그저 앉아서 박수를 보낼 뿐입니다. 만일 희극이었고 관객들이 웃는데 익숙해져있다면 모두들 일어섰을 지도 모르니까요.

제가 본 것이 마지막 공연이라 청이야기가 언제 다시 무대에 올려질까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청이야기가 다시 무대에 올랐을 때, 나도 뮤지컬 좀 보고 싶은데 뭘 봐얄지 모르겠어 라고 생각하신다면 청이야기를 고려해보실만 합니다. 배우, 무대, 음악 모두 아깝지 않은 공연이니까요.

PS> VIP 좌석은 비쌉니다. 그러나 비싼 만큼 제 값을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좋은 공연을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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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딸 아이를 중학교에 보내야 합니다. 항상 애기같은 아이가 벌써 중학교에 간다고 하니 아빠 마음이 좀 싱숭생숭합니다. 이러다 보면 딸 아이가 지금 아빠를 놀려먹는 아이템 중 하나도 금새 이뤄지겠더군요. “나 대학 가면 아빤 오십이다!” 으, 아주 미칩니다. ㅋ

중학교 배정을 앞두고 가정 통신문이 왔습니다. 그야 말로 실소를 금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위장 전입은 전형적인 소탐대실의 경우로서 귀한 자녀에게 편법과 불법으로 세상을 살아가라고 가르치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당당히 밑줄까지 그어왔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겠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이가 학교에서 오더니, 가정통신문에 부모님 사인을 받아오랬다는 겁니다. 참고로 가정통신문엔 부모님 사인 란이 별도로 없습니다. 그냥 옆에다가 사인을 받아오랬답니다.

좀 웃기더군요. 이 나라 최고지도자부터 행정부의 수장들까지 수 많은 사람이 버젓이 위장전입을 했고, 심지어는 위장 전입을 했다는 사실이 업무를 수행하는데는 별로 흠이 되지 않으므로(!) 당당히 임명되기까지 했는데 초등학교에서는 위장 전입을 “전형적인 소탐대실”이며 “귀한 자녀에게 편법과 불법으로 세상을 살아가라고 가르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데다가 학부모 사인까지 받아오라니 말입니다. 게다가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위장 전입이 폐혜를 낱낱이 설명하면서 최악의 경우엔 선생님과 학생과 부모님이 교육청에 끌려갈 수도 있다(!)라고 하셨답니다.

생각해보니 저런 법들은 그저 돈없고 힘없는 서민들만 철썩 같이 지키야 하는 것들입니다. 위장 전입으로 자녀들을 좋은 데로 빼 돌린(!) 분들은 그 귀한 자녀들에게 이 나라에서 좀 더 편리하게 살아가는 편법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사실 편법을 가르치지 못한 부모들이 무능력한 현실이 되버린 것이지요.

지도자의 도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꺠닫게 됩니다. 소위 말하는 지도층 인사들이 지키지 않은 법을 서민들은 지켜야 하니, 당연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능력만 있다면 도덕성은 별로 문제될 것 없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도덕에 둔감한 사람들이 갖춘 능력이란 것이 정말 선한 능력일까요? 사람의 능력은 도덕에 기반을 두어야 그 가치를 발휘하는 법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능력은 자기만을 위해 쓰여지는 것이 대부분일테니까요.

도덕성이야 말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최고의 능력이라는 점, 이젠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 어쨌든 저는 이 나라에서 위장 전입이 더 이상 불법이 아닌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닌 모양입니다. 그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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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태터앤미디어의

    Tracked from tattermedia's me2DAY  삭제

    요새 초등학교에서는 “위장 전입은 전형적인 소탐대실의 경우로서 귀한 자녀에게 편법과 불법으로 세상을 살아가라고 가르치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밑줄까지 그은 가정통신문이 온다고 합니다.

    2009/10/26 15:14
집에 돌아오니, 책상 위에 책 한 권이 놓여 있었습니다. 친분이 있는 딸 아이의 친구 아빠께서 읽다가 너무 감명 받았다고 같이 한 번 읽었으면 좋겠다고 쪽지가 한 장 얹혀 있는 책이었습니다. 같이 여행을 가기도 했고, 가끔 술 한 잔 하기도 하는 사이였지만, 이렇게 책을 선물 받으니 기분이 또 묘하더군요. 저도 뭔가 답례로 책을 하나 보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선물은, 아마 이래서 더 아름다운가 봅니다. 받으면, 무언가 다른 책을 보내야 하겠기에.

사실 저는 문학이나 역사, 철학 같은 책은 책에는 손이 많이 가는데 경제 경영, 처세 이런 류의 책에는 손이 잘 안 가는 편입니다. 그래서 이런 쪽 책을 선물 받으면 더 기분이 좋죠. 제가 잘 고르지 않는 분야의 책을 접하게 만들어 주니까요. 이번에 선물 받은 책은 홈플러스 이승한 회장님이 쓴 창조 바이러스 H2C 라는 책입니다.


책 내용은 어렵지 않습니다. 활자도 크고 페이지도 잘 넘어 갑니다. 한 시간, 길어도 두 시간 정도면 읽어 내릴 수 있습니다. 한국에 홈플러스라는 유통점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저자의 인생을 마치 자서전처럼 풀어 낸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어린 시절의 가정 형편 부터 삼성이라는 대기업에 취직해 일을 하는 과정들, 어려웠던 시간들과 영광의 시간들을 에피소드 중심으로 풀어내면서 저자가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결론부터 말하면, 저는 그닥 감동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처음엔 이거 뭐, 돈 많고 성공한 분의 자기 자랑인가 보다, 그런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신입사원 시절 복사만 6개월 했다는 얘기는, 뭐든 남보다 두드러지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얘기로 들리지만, 현실에선 100% 적용되는 얘기가 아니므로 신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려웠던 시절 선비였고 엘리트였던 부모님을 두지 못했고, 국내 최고 학부에 다니는 형제들을 두지 못했으며, 대기업에 입사해보지 못했던 이 땅의 훨씬 더 많은 보통 사람들에게, (물론 저자는 정말 피나는 노력을 했고 그래서 성공했겠습니다만) 나는 이렇게 했고 저렇게 해서 성공했다는 얘기가 얼마나 설득력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홈플러스라는 기업이 입점 업체에게 부리고 있는 횡포(비록 이 바닥에 있는 업체들이 다 그렇게 하는, 관행이라는 말로 두리뭉실 넘어 가고 있지만)에 대해 중소기업 사장님으로 부터 들은 얘기가 있는 저로서는 책에 나와 있는 좋은 얘기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더욱이 책 중간에 우리나라에 나와 있는 상이란 상은 다 받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다 받았다는 얘기에선 실소까지 나왔습니다. 다 그런 건 아니겠습니다만 일부 언론사에서 주관하는 소비자 대상 등등이 사실은 돈 내고 사는 광고라는 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기 때문입니다.

선물해 주신 분께는 좀 미안할 정도로, 비판적인 관점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어려웠던 시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힘을 많이 얻으셨다는 친구 아빠의 소감은 나중에 술 자리에서 따로 한 번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저도 무언가 답례를 보내면서 이런 자리를 만들게 되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책이 주는 메시지까지 무시해서는 안되겠지요. 비록 지나치게 잘 포장된 개인의 성공담이긴 하겠습니다만, 벽에 붙여 놓으면 좋은 문구들이 꼭 있거든요. 우리가 모르진 않지만, 가끔씩 스스로에게 경각심을 줄만한 그런 문구들을 다시 한 번 되새겨 읽게 했다는 점은 틀림없이 이 책이 주는 좋은 점이니까요. ^^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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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영원히 사랑해요”

하지만, 우린 압니다. 이것이 너무나도 지키기 힘든 약속이라는 걸. 사랑에 빠진 사람은 너무도 쉽게 많은 것을 약속하고, 많은 것을 장담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약속과 장담은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사랑하는 사람도 변하고 사랑받는 사람도 변하며, 그들을 둘러 싸고 있는 모든 것들도 변하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부터 격리 되어 온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납니다. 그들은 서로의 모습에 반응하고 호감을 가지며, 곧 사랑에 빠집니다. 그런 그들에게 나타난 또 한 쌍의 남녀. 에덴동산에서처럼 단 둘이서만 존재하던 그들의 관계에 새로운 존재가 등장한 것입니다. 남자와 남자는 친구가 되고, 여자와 여자는 적이 되며, 남자와 여자는… 친구이면서 적인, 오묘한 관계로 변해 갑니다. 과연, 그들에게 남아 있는 건, 어떤 관계일까요.

사랑에 대한 논쟁이란, 참으로 진부하기 그지 없는 소재입니다. 그러나 이것처럼 흥미진진한 논쟁도 드문 법이지요. 결국 사랑이란 영원하기 힘든데, 그 까닭이 다 저마다 각각이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솔직히 논쟁이란 연극을 보게 된 건, 사랑에 대한 논쟁이 궁금해서는 아닙니다.

네 명의 배우가 한 시간 동안 완전한 나체로 공연을 한다는 것은, 장안의 화제가 되고도 남을 일입니다. 설마, 조금은 가리겠지, 라는 생각은 첫 배우가 등장함과 동시에 숨이 막혀 오며 어디론가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나 어느 틈에 관객은, 배우의 몸 대신 배우의 연기를 보게 됩니다. 언뜻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 논쟁의 이미지였으나 때론 가볍게, 때론 적당히 무겁게 스토리가 흐릅니다. 어느 틈에 관객은 그들이 옷을 벗고 있다는 사실을 잊습니다. 잊는다기 보다는, 익숙해졌다고 해야 하겠지요. 그리고 씁쓸한 사랑의 결말에 안타까운 웃음을 짓습니다. 솔직히 저는 작품성을 평가할 수준은 못됩니다. 그러나 연극 내내 관심을 가진 건, 그들의 나체가 아닌, 그들의 공연이었습니다. 뭐, 솔직히 군살 하나 없는 남자 배우들의 몸이 부럽기는 하더이다. 비록 그저 꿈꾸기만 할 정도일지라도.

연극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나, 극장은 그렇지 못합니다. 소극장이라고 해서 앞 뒤 객석 사이에 다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봐야 하고, 밀려드는 관객 때문인지 통로에까지 손님을 앉힌 보조석 때문에 정작 자리에 앉은 사람마저 더 불편하게 공연을 봐야 합니다. 가뜩이나 다닥 다닥 붙어 앉아 낯선 옆 사람의 체온 때문에 불편한데 에어콘은 들어오는지 마는지, 끈끈한 땀을 흘리며 봐야 합니다. 논쟁을 제대로 즐기시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맨 앞 줄을 예매하시길.

다시, 돌아와서. 사랑은 영원하지 않지만, 한 편으론 또 영원합니다. 옮겨 다니기 때문이라고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사람이 변하는 것처럼, 환경이 변하는 것처럼 사랑도 함께 변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 때는 뜨거운 불이었다면, 한 때는 잔잔한 물이 되고, 코를 찌르는 강렬한 향수였다면, 바람 결에 실려 전해오는 은은한 꽃 향기도 필요한 법입니다. 사랑한다면,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언제나 남아 있는, 가장 강렬하면서도 끈기 있는  마지막 사랑일지도 모릅니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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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달아 계속 딸과 아빠의 관계에 대한 책을 읽은 건, 그저 우연이었습니다. 사실은 이 앞에 쓴 글의 소재인 ‘딸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 이유'라는 책을 사려고 Yes24를 뒤지다가 이 책 ‘딸에게 전하는 12가지 부의 비법'도 같이 걸린 거였거든요. 딱히 딸에게 ‘부’를 줄 방법이 없는 저로서는 ‘부의 비법'을 준다니까 오호, 이게 뭘까 그런 호기심이 발동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지 소로스와 함께 퀀텀 펀드라는 걸 만든 짐 로저스라는 사람이 썼답니다. 이 분은 퀀텀 펀드로 떼돈을 번 후 37살 나이에 은퇴해서 전 세계를 오토바이로 돌아다녔다는데 무엇보다도 37살에 은퇴했다는 사실이 정말 정말 부럽더군요. 저도 원래 목표는 마흔 살에 은퇴하는 거였는데! ^^


여튼 돈을 많이 번 이 분이 딸에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부자가 되는 방법을 알려준 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아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한 가문 대대로 물려줄 비급(!) 같은 것일까요. 하긴, 비급이라면 이렇게 책으로 내지는 않았겠지만요.

제목처럼 12가지 섹션으로 나뉘어 딸에게 주는 충고가 이 책의 주요 내용입니다. 아빠가 딸에게 마치 편지로 말하듯 그렇게 쓰여졌는데요,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지 마라, 네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라, 세계로 나가 넓은 세상을 보아라… 등 12가지 제목만 읽어보면 사실 좀 뻔한 이야기입니다.하지만, 원래 이런 책들이란 다 이렇게 누구나 알 법한 내용들인거고, 그걸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해 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솔직히 ‘기획’해서 만들어낸 냄새도 좀 납니다.

아무래도 성공한 아빠여서 그런지, 이 분의 충고는 냉정하고 날카롭습니다. 감성적인 충고 보다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충고가 많습니다. 앞서 읽은 ‘딸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 이유'가 감성적인 면을 가르치라는 조언을 하고 있다면 이 책은 그 반대의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이런 겁니다. ‘딸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 이유'에서난 아빠가 다른 남성들의 귀감이 되고, 다른 남성들과 인간적으로 교류할 것을 조언하는 반면 이 책에서 남성은 아빠가 경고를 해 줘야 할 대상입니다. ^^ 하긴 같은 남성이더라도 딸 앞에 얼쩡 거리는 남성을 어느 아빠가 좋게 볼 수 있겠습니까마는!

어쨌거나 저 개인적으로 되게 와 닿는 충고는 바로 이 것이었습니다.

‘철학을 배우고, 생각하는 법을 깨우쳐라'


사실 우리 교육 환경을 돌아보면, 생각하기 전에 먼저 외우라고 가르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왜 그런지 따지지 말고 일단 시키는 대로 외워서 공부하고, 그렇게 해서 좋은 대학 간 다음에 생각은 니가 하든 말든 맘대로 해라, 뭐 이런 분위기겠지요. 이런 교육 환경에서 철학 따위는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학교에선 정작 그렇게 배웠는데 취직을 할려니 기업은 창의적인 사람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사회에선 창의적인 사람을 필요로 하면서 정작 학교에선 획일화된 것을 가르치고 있으니 이것도 또 말이 안되는 것일테고요.

안타깝게도 이 아빠는, 현재의 교육 현실에 저항할만한 용기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저 시키는 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남들 가는 대학(뭐 당연히 좋은 대학이기를 바라는 마음!) 탈없이 갈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런 교육 환경에서 늦게까지 영어나 수학 문제 푸느라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만, 대한민국에선 누구나 겪어야 하는 일이라고 위안하기도 합니다.

아빠가 딸에게 가르쳐야 할 것들이 어디 이뿐이겠습니까마는 막상 가르치자면 또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빠는 내 딸 만큼은 최고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주춧돌을 놓기 위해 오늘도 아빠는 스스로를 갈고 닦아야 겠다고 마음을 먹습니다. 아빠 스스로 철학하지 않으면서 아이에게 철학하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일테니까요.

PS> 앞서 읽은 ‘딸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 이유'는 꼭 읽으시라고 권하고 싶고, 이 책은 시간 나시면 읽으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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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텐로이의 생각

    Tracked from bartenroy's me2DAY  삭제

    돈 열나 많이 번 아빠가 딸에게 가르치는 돈버는 비법을 소개한 '딸에게 전하는 12가지 부의 비법[2009_031]'. 돈 번 사람이 쓴 책이라 그런지, 충고가 현실적이고 살짝 냉정하다는 느낌이! http://tr.im/wAjg #booksoda

    2009/08/18 13:46
아무리 바빠도 주말에는 딸 아이와 함께 보내려 했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아빠의 일에 충실하고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딸 아이와 꼭 놀아주겠다고 그렇게 마음 속으로 약속했었습니다. 딸 아이가 어리고, 저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땐 주말이 아무리 힘들어도 어떻게든 외출할 거리를 만들고, 같이 놀아주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 토요일엔 혼자 집에 있는 저를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딸 아이가 자라면서 토요일마다 해야 할 다른 일들이 생기고, 친구들과 약속도 생기고 그러면서 이젠 아빠가 굳이 같이 놀아주지 않아도 될 때가 된 것입니다. 아침마다 아빠가 학교에 데려다 주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던 녀석이, 토요일이면 아빠가 학교 앞에서 기다려주는 것을 바라던 녀석이, 이젠 친구들과 가겠다고 아빠를 수고스럽게 하지 않습니다.

아빠의 마음 속에 있는 아이와 달리 현실의 아이는 이미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 자라버렸습니다. 처음엔, 이런 상황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마음 속엔 항상 어린 아이로 남아 있는 녀석이 벌써 컸다고 아빠에게 기대는 일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아빠의 역할이 어디까지인가, 이제 아빠는 어떤 존재로 남아야 하는가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뭐 딱히 결론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그저 딸 아이가 언제든 힘들 때, 그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문제들에 부딪혔을 때, 아빠는 항상 옆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수 밖에요. 그리고 우연히 발견한 이 책.

‘딸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 이유'는 딸 입장에서 보면 이유지만, 아빠 입장에서는 아빠가 딸에게 해줘야 할 100가지 행동 지침과 같은 겁니다. 주절 주절 설명할 것도 없이 100가지 이유를 짧은 문장으로 담았고, 세피아 톤의 사진으로 더 많은 말을 담았습니다. 짧은 문장인 만큼 원문을 함께 실어 원작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느낌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책 읽기 싫어하는 분들도 10분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 하지만 10분이 지나면 다시 한 번 들고 처음 부터 끝까지 다시 돌려 읽는 책. 곁에 두었다가 아이와 관계가 힘들어지면 다시 읽을 책, 이라고 이 책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전 이 책을 몇 권 더 구입해 딸 가진 아빠들에게 꼭 선물할 생각까지 해버렸습니다.

책 속에 소개된 100가지 행동 지침들은, 어떤 것들은 너무 추상적이고, 어떤 것들은 너무 지키기 어려운 것들인지 모릅니다. 모든 것을 다 지킬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이 중 하나 만이라도 확실하게 지켜줄 수 있다면, 딸 아이에게 아빠란 존재는 정말 특별한 존재일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데 다른 건 몰라도 이것 하나 만큼은 꼭 지킬 수 있겠더군요.

“딸에게는 업어달라면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업어주는 아빠가 필요하다"

책을 다 읽고, 저자 후기를 읽다가 저자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딸에게는 가족을 온전히 지켜주는 아빠가 필요하다"라고 써 놓고 정작 저자 본인은 이혼을 했다니. 물론 이혼에 대한 생각이 우리와 많이 다르겠지만 처음엔 뭐야? 이런 생각도 들었더랬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다 지킬 수 있는 아빠란 어쩌면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든, 이 책을 읽는 아빠든 어쨌든 사람일 뿐이니까요. 덕분에 완벽한 아빠의 강박 관념에서 해방될 수 있었을 겁니다. ^^ 저자도 다 못했는데 뭐, 나라고 다할 수 있겠어. 최소한, 업어주기라도 잘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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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읽을 책이 많이 쏟아져 나올 땐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어떤 책으로 골라 읽어야 한단 말인가. 물론 제일 쉬운 방법은 서점의 베스트 셀러를 참조하거나, 신문의 서평을 보거나, 책으로 유명한 파워 블로거의 리뷰를 보는 것이다. 여기에 내가 즐겨 쓰는 방법 하나를 소개하자면, 시리즈 물을 읽는 거다.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시리즈는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세트와 로마제국쇠망사 시리즈, 황금가지의 밀리언셀러 클럽 시리즈다. 다 읽으면 그냥 내키는 대로 골라서 읽으면 되니, 특별히 고르는 부담이 없어 좋다. 민음사의 두 시리즈가 좀 무거운 편이라면 황금가지의 밀리언셀러 클럽은 가볍게 읽어낼 수 있으니 전체적인 밸런스도 잘 맞는 편이다.

그런데, 시리즈를 읽다 보면 한 가지 단점도 있다. 시리즈의 모든 책이 다 내 맘에 드는 것이 아니라는 게다. 세계문학전집이야 이미 널리 알려진 책들이니 이런 위험이 적지만, 내가 잘 모르는 밀리언셀러 클럽의 시리즈들은 이런 위험이 다분이 도사리고 있었는데, 드디어 내 맘에 들지 않는 한 권에 부딪히고 말았다. ‘흑색의 수수께기'라는 단편집이다.

단편집은 장편에 비해 짧은 호흡으로 가볍게 읽어낼 수 있어 머리가 복잡할 때 내가 주로 고르는 책이다. 궁금할 뒷 얘기가 없어 할 일이 많을 때 머리 식히며 읽기에도 좋다. 할 일 많고 바쁠 때 괜히 장편 잡았다가 끝까지 다 읽어버리게 되면, 타격이 좀 크다. 이번 주말이 딱 그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단편집이라는 이유로 고른 '흑색의 수수께끼'에는 총 4편의 소설이 들어 있는데,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네 편이어서 읽고 나니 좀 당황스럽다. 추리 소설이라기 보다는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해야 하나, 기존 밀리언셀러 클럽들의 분위기와는 좀 달랐다. 그러다 보니 읽고 나서, 이게 뭐야? 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이 책에 수록된 ‘화남’과 ‘목소리’는, 추리 소설이라기 보다는 한 사람의 조금 기묘할 뿐인 일상을 다룬 내용이고, ‘저벅저벅’은 딱 일본스러운 결말에 그다지 기분이 개운하지 못했고 아인슈타인의 바이올린을 소재로 한 ‘가을날 바이올린의 한숨’은, 황당한 구성과 결말에 허탈함을 느끼게 했다. 한 마디로, 이 책 좀 재미 없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얘기다.

추리소설에 대한 내 내공이 깊지 못해 이런 류의 소설엔 적응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재미 없는 건, 재미 없다고 해야 할 판. 그렇다고 뭐 무를 수도 없고 ^^. 하긴 요즘 하는 말로 이런 건 시리즈 물을 읽기 때문에 생기는 복불복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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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하게 자신의 독서론에 대해 글을 쓰자니 겁부터 납니다. 따라서 제목은 비록 독서론이 되겠으나, 그저 ‘레이가 책을 읽은 까닭' 정도로만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책 읽기에 대해 논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저 좋아서 읽을 따름인 것을. 그나저나 이 숙제를 떠 넘긴 얌용님은 각오하시길.

칠순을 앞둔 한 어르신께서 언젠가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더랬습니다. ‘독서는 취미가 아니다. 생활이다' 칠순을 넘긴 분의 삶이 오롯이 묻어 나는 그런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팔자 좋은 분이셨던 거죠 ^^.  사실 그 분은 우리네 아버지들처럼, 생계를 위해 일을 했어야만 했던 분은 아니셨을 겁니다. 어릴 때부터 책과 그림을 접하셨던 분이셨으니까요. 그러나 어느새 저도 그 말에 깊이 동감하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건, 밥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고, 그래서 읽지 않으면 허기를 느껴야 하는 법이다. 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걸 한 낱말로 요약하자니 쉽지 않은 일이군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써 보렵니다.

독서란 [딸 아이의 기억에 남고 싶은 아버지의 모습]이다

해가 바뀔 때마다 저는 실현하기 어려운 줄 알면서도 올해는 꼭 200권을 읽겠다 다짐합니다. 솔직히 다 채운 적은 딱 한 번 뿐이었을 겁니다. 그 때는 200권을 목표로 세운 지도 않았을 때인데 마침 앉아서 매일 편도 50분씩 앉아서 지하철로 출퇴근 할 수 있는 직장에 다녔을 때였고, 회사 근처에 큰 서점이 있었을 때였고, 회사에도 책이 많았을 때였고, 요즘처럼 PMP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할 때였거든요. 오로지 지하철만 타면 책을 붙잡았으니 200권도 가능했던 겁니다. 그 뒤로 많이 읽은 해는 80여권 정도까지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올해는 비교적 실적이 좋아서 6월 기준으로 약 30권 정도를 읽은 듯 합니다.

제가 책을 읽는 이유는, 책을 읽는 것이 재미있기도 해서지만(간혹 허기지기도 합니다만!), 사실 딸 아이에게 책 읽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가장 큽니다. 딸 아이가 커서 아빠의 모습을 기억할 때, 책 읽는 아빠였다는 점을 기억해줬으면 하는 것이지요. 다행히도 딸 아이는 아빠를 닮아 책을 좋아하고, 책을 많이 읽습니다(책 값 부지런히 대는 것도 아빠의 역할인 셈이지요^^).

요즘 저는 에드워즈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를 읽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꼭 읽고 싶었던 책인데, 예전에 나온 번역서들은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읽다가 내려 놓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거든요. 올해 초 민음사에서 번역된 이 책은, 번역서의 한계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비교적 읽기 쉬운 편이더군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애독한 분들이라면 역시 비슷한 수준으로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듯 합니다. 게다가, 시오노 나나미와는 로마인의 역사를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아, 이건 그래 그래… 하며 고개를 끄덕일 지도 모릅니다.


이 릴레이는 Inuit님께서 시작하셔서, buckshot님, 고무풍선기린님, 류한석님, mahabaya님, 어찌할가님, 벼리지기님, 바람의 노래님, 모노피스님, 꼬미님, JaeHo Choi님, 감성적 젊은 이상가님, 비전 디자이님, jedimaster, 조현경, 제나두님, 에코님, 철산초속님, 얌용님을 거쳐왔습니다.

자, 이제 이걸 다른 두 분께 넘기는 것이 룰인 듯 싶은데, 참 어렵군요. ^^ 받아주시거나 말거나, 일단 넘기기부터 하면 ^^

한 분은 남아공의 스타이시자, 남 안타까운 일을 절대로 그냥 못 넘기는 샛별님
한 분은 우리나라 유통업계의 빛나는 보석, 정현아범님

이렇게 넘길까 합니다. 샛별님은 워낙 다음에서도 유명한 분이시고, 정현아범님은 재야에 묻혀 있는 분을 이번에 강호로 모시는 셈이 되겠군요.

두 분, 룰은 이렇습니다. 저처럼 제목에 [릴레이] 00의 독서론이라고 쓰시고
독서란 [ ] 이다를 채워주시면 되고
지금까지 릴레이한 분들의 이름을 죽 카피해 넣으시고
릴레이를 받을 두 분을 지정하시면 되겠습니다만
이 릴레이가 6월 20일까지 하기로 한 거니, 두 분 선에서 끝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도!
그리고 부담스러우시겠지만 저처럼 주저리 주저리 쓰지 마시고
그저 한 줄만 딱 써주셔도 될 듯 싶습니다. 정현아범님 평소 스타일처럼 말이에요. ^^

릴레이가 이어져, 책 읽는 대한민국이 됐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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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릴레이] 정현아범과 책이라..

    Tracked from Fluctuat nec mergitur  삭제

    하반기 경영전략 시즌이 와서리.. 블로그 잠수타고 있던차에.. 레이님의 독서 릴레이를 받고.. ① 어디 가서 책 읽는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독서량이 되지 않고.. ② 책 읽을 때마다 남들 다 짚어가는 주제 찾지 못하고 딴 얘기 하고.. ③ 결정적으로 책 사는 돈이 술 사는 돈보다 아까워서리.. 독서 릴레이 쓸 깜도 되지 않는다.. 생각하고 있던 차에.. 직원식당에서 저녁 먹으며 살짝 갈등.. 어차피 파워포인트 진도도 안 나가는 판에.. 전략기획..

    2009/06/17 20:10
  2. [릴레이] 나의 독서론

    Tracked from PR Alive by yamyong  삭제

    규칙입니다. 1. 독서란 [ ]다. 의 네모를 채우고 간단한 의견을 써주세요. 2. 앞선 릴레이 주자의 이름들을 순서대로 써주시고 3. 릴레이 받을 두 명을 지정해 주세요. 4. 이 릴레이는 6월 20일까지만 지속됩니다. 기타 세칙은 릴레이의 오상 참조 오늘 오전 출근해서 메신저에 접속하자 마자...유령기업 철산엔터테인먼트 CEO이자 차기 광명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자칭 '소셔르 미디어계의 이단아' 철산초속님으로 부터 본 릴레이를 받으라는 통보...

    2009/06/18 10:15
  3. [릴레이] 나의 독서론 - 독서란 연애다

    Tracked from 케이프타운에서  삭제

    독서란 [연애]다. 책을 통하면 무려 시간과 공간을 초월씩이나 해서 누군가를 만나고, 그 가운데 누구는 속속들이 알고 싶어지고, 통하는 것을 발견해서 가슴뛰기도 하고, 동의하지 않는 부분에 열 받기도 하고...

    2009/06/18 15:52
  4. 월아, 알고리즘

    Tracked from Read & Lead  삭제

    부제: 독서(讀書) → 독아(讀我) → 월아(越我)inuit님께서 나의 독서론이란 주제로 릴레이 포스팅을 시작하셨다. 규칙입니다. 1. 독서란 [ ]다. 의 네모를 채우고 간단한 의견을 써주세요. 2. 앞선 릴레이 주자를 써주시고 3. 릴레이 받을 두 명을 지정해 주세요. 4. 이 릴레이는 6월 20일까지만 지속됩니다. 기타 세칙은 릴레이의 오상 참조inuit님께서 유정식님과 맑은독백님께 바톤을 넘기셨고, 나는 맑은독백님으로부터 바톤을 이어 받았다...

    2009/06/19 06:04
창 넓은 사무실에 앉아 있다 보면, 하늘에 민감하기 마련이다. 눈이 부시도록 맑은 날엔 왠지 활기차게, 가슴 잔잔히 적시는 흐린 날엔 왠지 여유 있게, 세상을 적시는 비 내리는 날엔 차분하게 기분이 맞춰진다. 그 창이 동쪽을 향해 있다면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부터 기분을 조절할 수 있어, 더 행복하다.

하지메 미조구치의 Yours; Tears. 난 사실 잘 모르는 첼리스트였는데 - 첼로라고 하면 요요마 정도나 알 뿐! - 멜론 클래식 부문 차트에 랭크된 걸 보고 한 곡 듣다가 다른 곡도 모두 다운 받아 버렸다. 마침 다운 받은 날이 흐린 날이어서 그랬을까. 잔잔하게 울리는 첼로 소리에 그만 눈물이 날 뻔 했다.


Yours; Tears 앨범에는 모두 열 세 곡이 들어 있다. 전통 클래식이 아닌 우리가 흔히 들었던 팝이나 OST의 유명한 곡들을 첼로로 연주한 것이다. 귀에 익숙한 멜로디여서 그럴까. 느릿 느릿 하면서도 묵직한 첼로의 음색이 말할 수 없이 풍부하게 가슴을 파고 든다. 앨범의 첫 곡은 Yesterday Once More로 시작하고 마지막 곡은 She로 끝난다. She라니! 그 얼마나 오랫 동안 아껴 아껴 듣던 멜로디인가.  

맑은 날에 듣는다 해도 음악이 어디 가겠는가. 또 음악이란 환경에 따라 기분에 따라 들리는 감성이 다른 법일게다. 그러나 맑은 날엔, 맑은 날 대로 들어야 할 음악이 따로 있으니 Yours; Tears는 흐린 날 용으로 아껴둬야 겠다. 오늘처럼 잔잔하게 흐린 날 소중하게 보관했던 LP 앨범을 꺼내듯, 아이튠즈를 열고 플레이를 누른다. 내 맥북에 연결된 하몬카돈의 사운드 스틱이 이런 날일 수록 더 고맙다.

오늘도 난 창 옆에서 광합성을 한다. 오늘 같은 흐린 날에도 나를 넉넉하게 해 줄 영양소는 충분하다. 하지메 미조구치의 첼로는, 넉넉한 영양소와 함께 나를 충분히 적셔줄 물 같은 존재다. 그래, 흐린 날이라고 마냥 흐릴 수는 없는 일. 흐린 날은 흐린 날 대로 즐기는 방법이 다 있는 법이다. 어차피 언젠가 해는 또 떠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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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읽다가 나는 문득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를 떠올렸다. 1991년 쯤 나왔을 이 책은, 음란성이 강하다는 이유로 판금 조치 된데다가 저자인 마광수 교수는 이듬해인가 구속까지 됐다. 운좋게도(!) 판금 되기 전에 책을 구해 놓은 친구 녀석 덕에 난 즐거운 사라를 읽을 수 있었는데, 읽고 난 후 내 소감은 이랬다. 이게 뭐?

팔팔한 이십대 청년에게 그런 정도로 굳이 사람을 잡아 넣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게다. 그러나 사실 내용이 평범한 건 아니었다. 행위 장면을 꽤 구체적으로 표현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으니까. 그러면서 아마 예술과 외설을 구분하는 기준이 뭐냐, 하면서 세상이 참 시끄러웠다. 지금은 판금에서 해제되어 살 수 있을까 하고 인터넷 교보문고를 검색했더니 품절이란다.

즐거운 사라가 예술인지 외설인지 나는 구분할 재주는 없고(솔직히 이런 건 읽는 사람이 구분해야지, 누가 읽어라 마라 할 것인가. 그러나 적어도 아는 것 한 가지는, 즐거운 사라는 사랑에 대한 책은 아니라는 거다), 요즘 읽고 있는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읽다가 문득 든 생각은, ‘외설은 행위에 집중하는데 비해 예술은 마음(또는 사랑)에 집중하는 것이 아닐까'였다. 뭐 이런 거다.



포르노나 속칭 야설 같은 것들 대부분이 스토리에는 별 관심이 없고 행위에만 집중하는 반면 명작이라고 부르는 책들은 출판 당시에는 비판을 받았을 지언정 어쨌든 행위 보다는 행위 전후를 중심으로 사람의 심리를 표현하는데 집중한다. 그리고 그 관계를 중심으로 사회상을 묘사하고, 당시의 현실을 비판한다. 사람들은 그 치밀한 심리 묘사에 감동하고, 그 심리를 통해 사회상에 대한 비판이든 애정이든, 글로 표현해낸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명작은 탄생하는 것일 게다. 흔히 우리는 그 심리를 사랑이라고 부른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 나타난 성애 장면 묘사는 꽤 구체적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행위의 묘사가 아닌, 심리의 묘사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작가는 정말 감탄할 수 밖에 없는 어휘로 표현해낸다. 게다가 내가 읽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 하나인 이 책은 꽤 매끄럽게 번역되어 읽는 도중 어색한 단어가 튀어나와 걸리적 거리는 느낌도 거의 없는 편이다.

오늘 아침 같이 일하는 토양양이 보내준 인터넷 포춘 쿠키를 깨 보니, ‘무한한 사랑만이 인생을 즐겁게 한다'는 메시지가 튀어 나왔다. 어떤 마음이 정말 사랑하는 것일까. 무한한 사랑이란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랑한다는 것으로 인해 우리가 얻을 수 있고 또 버려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제도와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굴레와 사랑의 자유로움은 결국 어디선가 충돌하고 마는 것 아닐까. 반복되는 질문과 대답으로 나는 사랑에 대해 길을 잃는다. 그러나 그 길을 안내할 사랑이 따로 있음을 나는, 여전히 믿고 있다. 코니도 언젠가는 그 길을 찾아낼 것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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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사방에서 추천해 주는 추리 소설을, 마치 늘어나는 몸무게 때문에 먹어서는 안될 달콤한 간식을 몰래 먹듯이 하나씩 빼 먹고 있는 레이. 역시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 없듯이, 책도 세계문학만 읽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다. ㅋ 이번에 선택한 책은 13계단. 나름대로 추리 소설 마니아인 우리 사무실의 토양양은, 13계단 읽을 거야, 했더니 오, 죽여요! 라고 강추했다는. 이 책을 처음 추천한 다희양토양양의 강추를 받았으니 기대감은 급상승! 이러다가 재미 없으믄 두 사람한테 책임을 떠 넘겨야지, 라는 못된 생각과 함께 읽어내리기 시작했으나…


처음엔 살짝 지루한 듯 싶다가 - 이건 정말 강력한 추천 때문에 급상승한 기대치의 책임일 듯 - 순식간에 빨려 들게 만드는   작품. 지난 번에 읽었던 천사의 나이프처럼 사법 제도의 모순과 그 안에 감춰진 인간의 욕망을 적절히 풀어내면서 정말 놀라운 반전을 던져 준다. 책을 완전히 읽고 나서야 예상치 못한 결말에, 허탈함을 던질 지도 모를 일. 이렇게 극찬을 해 놓으면, 나 때문에 이 책을 읽을 분들은 또 기대감이 급상승 할 것인데, 그건 내 알바 아니라는 무책임한 발언과 함께 약간의 스토리를 풀어 놓겠다.

한 명의 사형수. 노부부를 잔인하게 살해한 죄로 사형을 언도 받고 집행 일을 기다리는 그는, 정작 자신이 살해한 일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순간적인 기억 상실증으로 판단한 사법부는 그에게 기회를 주는 대신, 가차 없는 사형 명령을 내린다. 그리고 그는, 아침마다 자신의 방 앞을 서성이는 발자국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그렇게 하루 하루를 보낸다.

한 명의 전과자. 본인의 의도와 상관 없이 누군가를 살해하게 된 청년. 사망자가 먼저 공격했고 피하는 과정에서 살인이 일어났음을 감안해 2년 형을 치르고 가석방으로 풀려난다. 돌아와 보니 자신이 저지른 일 때문에 부모는 배상금을 물어주느라 가산을 탕진하고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 그러나 그는 정작 자신이 저지른 살인에 대해서는 한 올의 미안한 마음도 갖고 있지 않다. 그의 잘못이 아니므로.

한 명의 간수. 이제 막 퇴임을 앞둔 간수. 그에게 사형수의 무죄를 밝혀달라는 익명의 요청이 들어온다. 자신의 과거에 대한 속죄를 하기 위해 기꺼이 일을 떠맡은 그는, 그가 평소 눈여겨 봤던 그 전과자 청년에게 동업을 제안한다. 딱히 할 일도 없고 부모의 재정난을 해결해야만 했던 전과자 청년으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다.

사건의 실마리는 사형수의 희미한 기억 하나, 바로 돌계단. 막연한 돌계단에 의지해 간수와 전과자 청년이 사형수의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간다. 과연 사형수는 정말 살인을 한 것일까. 왜 간수는 전과자 청년을 자신의 파트너로 결정한 것일까. 전과자 청년은 정말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이제 와서 사형수의 무죄를 밝히려는 인물은 또 누구일까.

사법 제도의 모순은 애당초 사람을 심판할 권리가 없는 인간이 누군가를 심판하기 때문에 생겨난 어쩔 수 없는 것일 게다. 그러나 사회의 질서를 유지 하기 위해선 비록 모순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누군가 누구에게 판결을 내리고, 집행해야 한다. 이상적인 사법 제도는 이 과정에서 단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막기 위해서라면 범죄자가 풀려나는 것을 개의해서는 안된다고 말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희생되고, 그에 대해선 아무런 댓가도 치러지지 않는다. 독자는, 작가와 함께 이런 갈등의 구조에 빠져 든다. 그리고 우리는 이 모순에 결말을 낼 수 없지만 작가의 결말에 안도하며, 때론 아쉬워하며, 때론 씁스레 한다.

이 책의 저자인 다카노 가즈아키는 영화, TV 등에서 극본을 쓰다가 2001년 13계단을 써서 에도가와 란포 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은 없는 법이라, 그 동안 작가가 수 없는 내공을 쌓아왔겠지만, 첫 방으로 대박을 터뜨린 건에 대해서는 마냥 부럽기만 하다. 이 책에서 13계단은 몇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그건 책을 읽을 사람이 스스로 찾아 볼 일이라 굳이 여기서 말할 거리는 못되는 듯 싶다. 어쨌거나, 재미있는 책이다. 이 작가의 다른 책인 유령 인명 구조대를 또 읽고 싶어질 정도로 말이다.

13계단(밀리언셀러 클럽 29)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다카노 가즈아키 (황금가지,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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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쯤 교통 사고를 당했다. 몇 달 동안의 병원 치료를 겪으며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그러나 가해자는 보험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전화 한 통 없었다. 대신 나는 보험 회사 담당자와 목소리를 높이며 싸워야 했다. 왜 내가, 피해를 입은 내가 싸워야만 보상을 받고, 그 보상으로 위로를 삼아야 하는가. 내 잘못이 아닌데. 교통 사고를 당해 본 사람이라면, 그 처리 방식의 황당함에 화를 내지 않을 수 없다. 피해를 본 나에게 사고 수습의 모든 책임이 던져지기 때문이다.

하다 못해 교통 사고만 해도 이런데, 현대 사법 제도는 개인의 복수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엄청난 아이러니를 갖고 있다. 가해자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신상을 제대로 알 수 없으며 심한 경우 재판에도 참여하지 못한다. 피해자와 가족들은 크나큰 아픔을 간직한 채 힘겹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데 사법제도는 가해자의 삶에만 관심 있을 뿐 피해자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 결과적으로 가해자의 삶에 대한 평가만 존재할 뿐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평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수많은 가해자들은 사법의 처벌을 받았다는 이유로 자신은 정당한 댓가를 치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가해자는 사법 제도의 처벌을 받으면 모든 것이 끝난 것일까. 가해자로 인해 인생이 망가져버린 피해자들의 삶은 어떻게 보상 받아야 하며 어떻게 치유 받아야 하는가.


중학생 세 명이 한 여인을 무참히 살해한다. 그러나 이들은 14세 미만의 아이들은 처벌하지 않는다는 사법 제도에 따라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단지 교화 기관에서 교육을 받을 뿐이다. 이들의 정보는 철저히 감춰지고, 여인의 남편은 그에 대해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 없다. 남편은 아내를 죽인 중학생들에 분노하고, 그들만을 싸고 도는 사회에 분노하고, 사법 제도에 분노한다. 그리고 일갈한다. “국가가 벌을 내리지 않는다면 제 손으로 직접 범인을 죽이고 싶습니다.”

시간이 흘러 겉으로 보기에 상처가 아물어 갈 무렵, 이젠 십대 후반으로 성장한 아내를 죽인 소년들이 하나씩 죽기 시작했다. 최대의 용의자는 당연히 남편. 경찰은 그를 용의선 상에 올려 놓고 수사망을 좁히기 시작하고 남편은 남편 대로 이 사건의 전모를 다시 캐기 시작한다. 그리고 밝혀지는 사실들. 과연 소년들은 누가 죽이기 시작했으며, 남편의 아내는 어찌해 목숨을 잃어야만 했는가.

야쿠마루 가쿠의 추리소설 천사의 나이프는 미궁에 빠진 사건을 풀어가며 범인을 찾아내는 추리 소설이면서도 사법 제도의 모순과 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작가의 몸부림을 그대로 보여주는 책이다. 작가는 끊임없이 사법 제도의 모순을 생각하게 하고, 그 모순에 항의하게 하고, 결국 분노하게 만든다. 나는 책을 읽으며 작가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주인공의 감정에 동감하고, 행한대로 갚으라는 고대 법률이야말로 최선의 법률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나 그것이 정녕 해답이란 말인가.

결국 작가는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만이 이러한 모순점을 해결하는 열쇠임을 제시하고, 사법 제도의 모순 뒤에 숨어 자신의 책임은 이미 끝났다고 주장하면서 진심어린 사과를 하기 싫어하는 인간의 지극히 이기적이면서도 비열한 개인주의를 통렬히 비판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 중 하나는, 인간이 서로를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일텐데…

35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잡은 순간, 끝을 보지 않고서는 덮기 힘들다. 작가의 문체는 숨막힐 정도로 긴장감이 흐르거나 빨리 전개되는 것은 아니지만, 읽는 내내 사법 제도의 모순에 대해 곰곰히 되씹게 만들면서 지루할 틈 없이 마지막 장을 넘긴다. 예상치 못했던 최후의 조종자를 알게 되고, 인간의 비열함에 화를 내며, 그 사실이 밝혀졌다는 이유로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리고 다시금 반문한다. 사람은 누구나 크던 작던 실수하는 법이고, 그 실수로부터 새롭게 태어날 기회를 얻기 마련이다. 실수로 인해 그 기회를 빼앗는 것도 결코 옳은 일일 수는 없다.  그러나 실수로 인해 누군가 상처를 받았다면, 그 상처를 치유하는 책임도 사람에겐 있는 법일게다. 우리를 사람이라고 부르는 건,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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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읽기가 주는 짜릿함을 만끽하고 싶다면 추리소설을-추천도서 천사의 나이프

    Tracked from 김다희블로그  삭제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내지는 책장을 여는 순간부터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옴싹달싹 못하게 만든다라는 수식어는 경영서도, 순수문학이나 에세이도 아닌 추리소설에 가장 적합한 표현이란 생각이 듭니다. 평소에 하드보일드나 호러 영화는 카메라 앵글이 뒤로 빠지면서 언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불안함과 화면을 가득 매우는 빨간 피가 주는 공포감 때문에 즐겨 보기는 힘들어 하지만 (극장에서 봤던 가장 무서운 영화가 장화, 홍련이니 말 다했음. -_-)..

    2009/04/07 13:19
  2. [책] 천사의 나이프: 전형적인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

    Tracked from 책 읽는 토양이  삭제

    야쿠마루 가쿠가 쓴 ‘천사의 나이프’는, 딱히 참신하다거나 한 건 아니어서 책 자체에 대해 그다지 쓸 말은 많지 않을 듯. 일본의 전형적인 사회파 추리소설인데, 죄의식에 좀더 천착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습니다. 재미가 없다고는 하기 어려우나, 엉성한 뒤끝이 썩 개운치는 않음. 천사의 나이프 -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수현 옮김/황금가지 다만, 이런 생각은 듭니다. 현대 사회는 모종의 정신분열을 조장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2009/04/08 12:46
책장을 뒤지며 20년된 책을 찾아 꺼낸 건 순전히 샛별님 때문이다… 라고 핑계를 대고 있지만, 만일 누군가 내게 ‘그르니에’라는 말 한 마디만 던졌더라면, 엄마네 집 낡은 책장을 뒤져서라도 나는 이 책을 찾아냈을 게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이 책은, 몇 번의 이사를 거치는 동안 버려지는 운명을 피해 내 방 책장 구석에 얌전히 자리하고 있었다. 낡았지만 익숙한 그 커버를 보는 순간, 나는 한 없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불문학을 전공한 까닭에 나는 프랑스 문학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어왔었지만, 그 중에서 이 만큼 내 마음에 강한 인상을 남긴 책은 흔치 않았다. 물론 대학 2학년,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도서관에서 읽어대던 지드의 소설들은 까뮈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에게 감탄스러움과 동시에 어리둥절함을 남져 준 것'이었고 까뮈의 글들은 내 존재에 대한 헛갈림을 유도하면서 내 인생에 기억나는 책들로 자리잡았으나, 역시 까뮈의 표현을 빌면 쟝 그르니에의 섬은 나에게 ‘아찔하면서도 유효적절한 계시'를 남겨줬다.


도대체 뭔 소리여! 라고 말하는 사람에겐, 그저 쟝 그르니에의 책을 읽어 보라고만 해야 겠다. 사람에 대한 잔잔하고도 깊은 이해, 그리고 젊은 누군가라면 한 번쯤은 고민했을 나 자신에 대한 통찰. 그르니에는 어렵지 않고 잔잔한 문체로 그의 생각을 보여 준다. 마치, 친절하고 따뜻한 어느 인생 선배처럼 그르니에는 자근 자근 그의 생각을 들려주고, 독자는 누군가의 얼굴을 보며 그의 이야기에 푹 빠져드는 것처럼 책장을 넘기게 된다.

외롭다는 말에서 비롯된 섬. 아마도 그르니에는 외로운 섬에서 인간의 모습을 찾아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다양하면서도 본질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없는 인간의 삶에 얽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 주며, 고뇌에 지친 사람들의 머리에 잠깐의 쉼을 선사하는 지도. 만일 누군가 지쳐 힘들고, 그저 마음이 외로울 때라면, 이 책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일게다.


다행스럽게도 이 책,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구할 수 없었던 듯 한데 지금은 민음사에서 쟝그르니에 선집으로 만날 수 있고 원래 이 책을 냈던 청하출판사에서도 다시 발행을 시작한 모양이다. 청하의 책은 내가 가지고 있으니 난 조만간 민음사의 그르니에 선집을 사고 말게 될 듯.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을 만난 이후로 계속해서 민음사 책과 인연이 닿는 것은, 그저 닥치고 읽으라는 신의 계시인가 보다. 게다가 내 그동안 미치도록 읽고 싶었지만, 그 동안 내공이 안되어 읽지 못했던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가 민음사를 통해 또 나와버렸으니, 당분간 민음사 책에 올인할 듯. 이래 저래 읽을 책은 쌓여만 가는데, 시간에 대한 핑계는 여전히 날 부끄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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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를 만든 내 인생의 책 연대기

    Tracked from 케이프타운에서  삭제

    사람의 성장..... 액스는 와이....식의 1차 그래프는 분명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계단식이랄까, 군데 군데 퀀텀 리프(Quantum Leaps)가 있는....? 내 인생의 비약을 있게 한 책 다섯 권을 골라 보기로 한다. 이...

    2009/04/06 20:08
요즘 계속 무거운 책을 읽다 보니, 책 한 권 끝내기가 쉽지 않다. 덕분에 좀 덜 무거운 책들이 순위에서 밀려서 아직도 책상 한 켠에 처박혀 있었는데, 그 중 한 권이 바로 핫 트렌드 2009라는 책이다.


이 책을 알게 된건 얼마 전에 RSS 등록해 둔 에고이즘 님 블로그를 통해서였다. ‘트렌드 세터가 되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이라는 글 속에, 메인으로 소개된 책과 서브로 소개된 책 두 권을 냅다 질렀는데 그 중 서브가 바로 이 책인거다. 사실 책을 사고 나서 삼분의 일쯤 보다가 업무 미팅이 있어서 덮었는데, 잠시 있다가 읽어야지 했던 것이 거의 한 달은 끌은 듯.

주로 소설 등등을 읽기 좋아하는 나는 이런 종류의 책은 잘 읽지 않는데 - 몇 번 겪은 대부분의 책이 앞 부분은 그럴 듯 하지만 뒷 부분으로 갈 수록 내용이 없었다는! -  기대치를 포기하고 읽어서 그런지, 아니면 요즘 무거운 책만 읽어서 그런지 페이지가 쑥쑥 넘어가서 놀랐다는!

간단한 소감만 말하면, 일단 재밌다.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 신기술, 서비스, 제품 등을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데, 신기술은 그렇다 쳐도 제품 얘기가 나오면, 어 이거 갖고 싶네라는 생각이 들고 인터넷 서비스를 소개할라치면, 나도 가입해야지 하고 쫓아가게 됐다. 트렌드를 나열하는 방식도 짧게 끊어내기 때문에 읽는데 전혀 부담이 없다. 게다가 일부 알고 있는 현상들에 대한 반가움이란. 숙독하지 않고 가볍게 흘려 읽어내릴 생각으로 잠자리에 들고 들어갔던 책이 그만 끝장을 보고 말았다.

솔직히 트렌드와 별 관계가 없는 나로서 이 책 한 권 읽고 트렌드 세터가 될 리는 없겠지만, 이런 저런 사회 흐름을 이해하는데 그리 나쁘지 않은 책인데다가 누차 강조하지만 지겹지 않다는 점에서 괜찮은 점수를 주고 싶다.

트렌드를 쫓아가는 것과 트렌드를 만드는 것은 분명 큰 차이가 있을 게다. 그러나 트렌드를 알지 않고서 트렌드를 이끌 수는 없는 법이겠지. 물론 전혀 엉뚱한 것이 튀어나와 트렌드를 만들기도 하지만 - 마치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 그건 그 시대의 영웅이나 할 수 있는 문제이고, 대부분은 현재의 트렌드를 반영해 새로운 트렌드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책 한 권에 담긴 트렌드가 세상 전체를 말해 줄 수는 없는 법이지만, 그래도 모르는 것보단 알고 있는 것이 훨씬 즐겁다. 사람들이 그러지 않는가. 인생이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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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파리대왕. 몇 명의 아이들이 섬에 불시착해 살아가는 이른바 모험 소설이면서도 그 안에 인류의 삶에 대한 깊은 의미를 담고 있어 사실적인 설화 예술의 명쾌함과 현대의 인간 조건을 신비롭게 조명했다는 평가를 받은 소설.


짧은 한 줄로 파리대왕을 소개하기란 힘든 일이지만, 파리대왕 책 뒷 편에 수록된 작품 해설은 이 비슷한 내용으로 시작한다. 게다가 굳이 작품 해설을 빌지 않더라도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타이틀은 괜히 받는게 아니다. 그런데 이런 책을 작품 해설을 먼저 읽어 보고 전체 의미를 이해했다고 설친데다가 십오소년표류기와 비슷한 내용이니까 쉽게 읽을 수 있겠지, 하고 만만히 보고 덤빈게 일단 실수였다. 작품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안 것이 큰 도움이 된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나. 꽉 짜여진 소설 안에서 깊은 의미를 다시금 깨닫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 알다시피 파리대왕의 주인공들은 12세 이하의 소년들이다. 무인도에 불시착한 그들은 처음에는 ‘소라'로 대표되는 나름대로의 규칙을 세워가며 사회성을 발휘하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사냥’으로 대표되는 인간 내면의 야만성을 드러내고 질서를 깨뜨린 후, 힘으로 표현되는 새로운 질서를 세운다. 질서를 지켰을 때 특별한 혜택이 오지 않으면 그 질서를 쉽게 무너뜨리고 힘의 본능 대로 움직이는 것이 인간의 본성일까. 어린 소년들도 대표되는 인간의 본성이란 원래 이렇게도 나약하고, 잔인한 것일까. 파리대왕은 인간 본성에 대해 우울하고 서글픈 분위기를 내내 전달하고, 읽는 내내 마음을 가라앉게 만들었다.

번역을 가리켜 또 하나의 창작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번역은 힘든 고통의 작업일 수 밖에 없을 게다. 따라서 이렇게 수고스러운 번역에 대해 왈가왈부할 형편은 되지 못하나, 나름 한 가지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은 말해야겠다. 소설 내내 튀어나오는 낯선 한자말들. 고대, 산정, 권곡, 초호, 화경, 천개, 외경, 겁화, 무연 등등… 도대체 무슨 말인지 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말들이 중간 중간 튀어나와 읽는 리듬을 깨뜨렸다. 원작자가 번역하기 어려운 특별한 글자를 써서 우리로서도 잘 쓰지 않는 한자말로 번역할 수 밖에 없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런 류의 한자말 번역은 ‘오늘날에는 오늘의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오늘의 번역이 필요하다'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발간사와는 거리가 있는 번역이지 싶다.

여튼, 사람의 본성이 정말 악한 것일까.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렇다고 해야 할 듯 싶다. 하긴, 인간에게 있어 선이란 항상 주관적인 가치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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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라는 다큐멘타리 영화를 봤다. 2008년 9월에 개봉한 영화를 이제야 봤으니 극장에서 본 건 아니다. 소위 말해 다운로드 받아 봤다. 그런데 이번 다운로드는, 예전의 다운로드와 개념이 좀 다르다. ^^ 2천원 내고 받은 유료 다운로드였기 때문이다.

유료로 다운로드 했다고 해서 뭐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마는, 다운로드에 대한 개념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고 해야 할까. 요즘 저작권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유료 다운로드 사이트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나도 슬슬 유료 구매하는 횟수가 늘고 있다. 미인도에 이어 두번째. 확실히 쉽게 구매할 수 있어야 사람들이 사는 법이다. 게다가 최근에 구매한 2009년형 엑스캔버스는 USB 메모리에 avi 파일을 복사해 넣기만 하면 TV에서 쉽게 재생할 수 있다. 정말 편리하다. 별도의 Dvix 플레이어가 필요없다는 얘기. 올해부터 Dvix 재생 기능은 TV의 기본 트렌드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다큐멘타리 영화 얘기하면서 서론이 쓸데없이 길었던 듯. 이름에서도 눈치 챘겠지만, 지구는 다큐멘타리 영화다. 온난화로 인한 생태계의 변화, 그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서식처를 옮겨다니는 동물들의 생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쓰러지고 마는 동물들의 아픔을 담았다. 그러니 감동을 기대할 순 있어도 재미를 기대할 수는 없는 영화다.

영화는, 시작부터 가슴 저리다. 동면을 끝내고 나온 어미 북극곰의 등장. 설산의 동굴에서 나온 어미는 몇 개월을 굶었음에도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먹이가 있는 곳을 찾아 내려가야 한다. 새끼들을 돌보는 필사적인 모습. 그러나 그들에게는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 기후 온난화로 얼음이 생각보다 빨리 녹고 있다. 얼음이 녹으면 북극곰의 먹이인 물개를 잡을 방법이 없다.


먹이를 찾아 3천킬로미터를 횡단하는 순록들. 갓 태어난 새끼들 조차도 쉼없이 뛰어야 한다. 이들을 쫓는 또다른 포식자. 먹으려는 자와 먹히지 않으려는 자의 숨막힌 경주가 시작된다.

북극곰, 흑등고래, 아프리카 코끼리… 먹을 것을 찾아 먼 거리를 이동하는 동물들의 삶이 가슴아프다. 게다가 갓 태어난 새끼들을 돌보는 그들의 모습은 본능이라는 말로 단순화 하기엔 그 행동이 너무 눈물 겹다. 온 몸으로 울타리를 만들어 맹수들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고, 새끼들이 쫓아올 수 있도록 큰 소리를 내며, 지쳐 쓰러진 새끼를 내버리지 않고 발로 툭툭 쳐 꺠우는 모습을 보노라면, 그들의 행동이 오로지 본능 뿐이라는 말은 믿을 수가 없다. 그들에게도, 사람과 같은 감정, 사랑이 존재한다.

기술의 힘은 놀랍다. 한 마리 동물의 움직임을 가까이에서 잡다가 카메라를 하늘로 들어 올리며 그의 위치를 조망한다. 어미에게 떨어져 나온 아기 코끼리… 어미의 흔적을 쫓으나 카메라가 줌아웃 되면서 우리는 그 코끼리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어찌할까. 누구도 그를 도와줄 방법을 찾을 수는 없으니.

지구 환경의 변화로 동물들의 삶은 점점 더 고달파졌다.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이라는 이름 때문에 지구는 손상됐고, 그 이유를 알 턱이 없는 동물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삶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므로, 그들 역시 결국은 생존할 방법을 찾아내겠지만(찾아내기를 꼭 바라지만), 이젠 우리가 무언가 해야 할 때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영화의 마지막, 이젠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는 슬픈 나레이션이 가슴 찡하다. 과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직 늦지 않았다는 자막 한 줄을 보며, 조용한 위안을 받는다. 올 봄엔, 자전거를 조금 더 많이 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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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름다운... 아름다웠던 그들의 별... 지구(Earth)

    Tracked from 라디오키즈@LifeLog  삭제

    46억년 전 충돌한 행성 덕분에 23.5도 만큼 기울어진 지구... 그렇게 지구는 계절의 변화가 생겼고 생명체로 가득한 놀라운 기적의 별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지구(Earth)는 북극에서 출발해 남극까지 지구의 곳곳을 훑으며 생명으로 가득한 변화 무쌍한 지구의 모습을 담아낸다. 관찰자의 시점으로 묵묵히 지구의 여기저기를 훑어내려가는 카메라가 담아내는 화면은 경이롭다. 계절이 바뀌고 꽃과 나무가 자라며 그 안에서 다양한 생물들이 생..

    2009/03/09 19:40
  2. 자가용차 없이 살 수는 없는가?

    Tracked from 일다의 블로그 소통  삭제

    주변사람들 가운데 여러 이유에서 자가용차가 없는 이들이 더러 있긴 하지만, 지구환경을 위해서 자가용차를 거부하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두 아이의 아버지이고 철도노동자인 그는 반생태적인 자동차문화를 반대하기에 당연히 운전면허도 딸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런 그는 주위에서 특별한 사람, 유별난 사람으로 취급 받는다. 비록 운전면허는 가지고 있지만, 같은 이유로 자가용차를 구입하지 않고 대중교통과 두 다리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는 내게,..

    2009/03/16 20:34
대학 때부터 몇 번이고 읽고 싶었던 작품. 그러나 아직까지 진중하게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작품. 올해 세계문학전집을 읽어야 겠다고 마음 먹은 후 가장 먼저 찾았던 작품. '고도를 기다리며'는 내게 그런 작품이었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는다고 했더니 우리 사무실의 영문학도 출신 두 명이 이내 아는 체를 한다. 어랏? 이건 프랑스어 작품인데 영문학과 출신이 이걸 어찌 알어? 이런 대답이 나온 건 내 지독한 편견 때문일 게다. 다 알다시피 '고도'는 프랑스식 이름이다. 게다가 이 책의 원어 제목은 En attendant Godot다. 그러니 나는 이게 당연히 프랑스 문학 작품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영문학도 출신 중 한 명인 사장님 왈, 니네 과에서 그거 배워? 우린 연극도 해. 헐. 까먹었는 지도 모르겠지만, 수업시간에 '고도를 기다리며'를 배운 적이 없었다. 그리고 불문과에서는 연극을 해도 몰리에르, 라신느 등등을 하지 부조리극을 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작가 이름은 사무엘 베케트 아닌가? 프랑스 식이었다면 '사뮈엘 베께'라고 불렀을 지도 모를 일이다.

사무엘 베케트는 아일랜드 사람이다. 프랑스어에 능숙해 영어와 프랑스어로 번갈아 가며 작품을 냈고 심지어는 영어로 쓰고 프랑스어로 번역하거나, 그 반대의 번역도 꽤 했다고 한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프랑스어로 먼저 썼고 나중에 영어로 번역했다. 그러니 사무엘 베케트에 대해 진중하게 공부를 한 적이 없는 나로서는, '고도를 기다리며'가 프랑스 문학이라는 지독한 편견에 빠져버리게 된 것이었다. 뭐, 결과적으론 내 잘못이지만.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고도를 기다리며'는 참 어려운 책이었다. 두께로 따지면 하루면 충분히 읽어낼 책을 거의 1주일은 붙들고 있었다. 진도도 안 나가고, 생각도 많이 하게 만드는 책이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고도라는 사람을 기다리며 얘기하고, 싸우고, 때론 침묵한다. 우리 여기서 뭐하는 거지? 이제 그만 갈까? 아니 고도를 기다려야 하잖아. 어떤 행위가 끝나는 지점에서 두 사람은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현실을 뇌까리며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살면서, 이런 행위들을 나는 얼마나 많이 반복하는가.

삶은 참 부조리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주장했다. 심지어 부조리 자체도 부조리하다고 말했다. 넘쳐나는 부조리 속에서 살며 사람들은, 나는 심지어 부조리란 무얼 가리키는지 잊고 말았다. 무엇을 부조리하다고 말하는가? 인생이 이미 넘치도록 부조리해졌는 걸.

번역하신 분의 작품 해설에 따르면 고도가 누구냐?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했단다. 하긴 지금까지도 고도가 누구인지에 대해 논문을 쓰시는 분들이 있으니 고도를 기다리며에 열광했던 사람들에게는 고도가 누구인지 당연히 관심이 있었을 게다. 그런데 작가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단다. '고도가 누구인지 알았다면 거기 썼을 것'이라고 작가가 대답했단다. 그러니 결국 고도는 아무도 몰라, 며느리도 몰라가 된 셈이다.

살다 보면, 때론 기다림에 목표를 두는 것도 한 방법일게다. 그러나 정작 고도를 만나고 난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우리는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하는 법이다. 내 삶에 고도는 누구, 혹은 무엇일까. 난 누굴, 무엇을,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나는 그저 책을 좋아하는 독자일 뿐이고, 누군가의 책에 대해 비평인 리뷰를 할 형편은 되지 못한다. 게다가 명작에 대해서라면 더더 그렇다. 따라서 독서일기에 쓰는 글들은, 이름 그대로 일기이고, 철저하게 개인적인 소감일 뿐이라는 걸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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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호밀밭의 파수꾼

미디어 다시 보기 2009/03/02 02:18 Posted by '레이'
팔자 좋은 부자집 고딩 녀석이 학교를 때려친다. 학교에도 관심 없고 잘하는 과목이라고 해도 영작문 하나 뿐이니 학교에 잘 적응할 리 없다. 명색이 펜싱팀 주장인데, 펜싱 시합 하러 다른 학교 가는 길에 펜싱 장비를 잃어버리고, 친구들하고도 잘 어울리지 못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라곤, 자기 주위엔 순 얼간이 뿐이란다.

하지만 고딩은 어쩔 수 없는 고딩인 법. 학교 때려치고(정확히 말하면 짤리고) 집에 가서 사실을 실토하기가 두렵다. 몇 일 호텔 방에 묶으며 시간을 죽여 보려 하지만 - 마침 돈은 좀 있었으므로 - 아무도 그와 함께 시간을 죽여주지 않는다. 미치도록 사람이 그리워, 창녀를 사보기도 하지만, 그것도 별 신통찮다. 옛 여친을 다시 만나고, 착한 동생을 찾아 몰래 집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은…


결국은 뭐! 돈 많은 집으로 돌아간다는 얘기지. '호밀밭의 파수꾼'을 사게 된 건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인터파크에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검색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이 책. 나 대학 다닐 때만해도 명작 선집 리스트에 없었던 이 책이 왜 검색 순위 1위인 것일까. 도대체 무슨 내용을 담고 있길래.

그런데 나중에 누군가 들려주는 얘기로는, 이 책이 어떤 방송 프로그램의 소품 비슷하게 쓰였던 모양이다. 내가 가르치는 고등학생 중에서도 읽은 애가 있을 정도니 꽤 알려지긴 했나보다. 물론 이 책 얘기를 했더니 그 녀석은 아우 이 책, 거의 왕짜증이에요, 라는 분위기를 연출했지만서도. 논술 대비해서 읽으라는 책이었던가 본데, 명작을 이렇게 읽으면 나중엔 다시 명작을 쳐다보기도 싫어지는게 뻔한 일 아닐까.

여튼, 이 책은 어른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닌 청소년의 방황을 그린 성장 소설이다. 뭐, 내 식으로 따지면 성장통 소설이라고 해야 겠다. 성장하는 게 꼭 아픈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성장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죄다 뭔가 아픔을 안고 있으니 말이다.

생각해 보니, 난 저렇게 치열한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정말 마음 놓고 얘기할 누군가가 미치도록 그리웠던 적은 있었던 듯 하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 입시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한 때는 첫 사랑이었던 그 누구에 대한 그리움으로 길거리를 마냥 쏘다녔었겠지. 그리고, 그런 마음을 달래기엔 결국 마음 맞는 친구가 최고였다는 뻔한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그래, 크던 작던, 그 나이 때를 자라는 사람들에겐 아픔이 있는 법일 게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가 착한 동생인 피비에게 고백하는 미래의 소망이다. 호밀밭을 지키고 있다가 절벽으로 떨어지는 아이들을 잡아주는 일, 그게 그의 소망이다. 학교에서 짤린 녀석 치고는 꿈은 참 선하다. 어쩌면 그 역시 자신의 추락을 잡아주는 누군가를 원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우리 아이들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든다. 살아가는 즐거움을 알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하는데 치열한 삶을 살기 위해 전쟁터에 나간 것처럼 공부를 한다. 기업은 창의적인 인재를 찾는데, 학교는 획일화된 시스템으로 공부 기계만을 만들어 낸다. 그들의 아픔은, ‘대학 가면 다 끝나는 거야'라는 말로 묻혀 버린다. 그들의 아픔을, 우리는 정말 이렇게 묻어버려야만 하는가. 벌써부터 밀려드는 숙제 때문에 11시가 넘어도 책상 앞에 매달려 있는, 이제 6학년이 되는 딸 아이를 보며 대한민국의 아빠가 이렇게 무기력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난 오늘도 마음이 아프다.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할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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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를 만든 내 인생의 책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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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성장..... 액스는 와이....식의 1차 그래프는 분명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계단식이랄까, 군데 군데 퀀텀 리프(Quantum Leaps)가 있는....? 내 인생의 비약을 있게 한 책 다섯 권을 골라 보기로 한다. 이...

    2009/03/28 13:42
행복이란, ‘아무런 걱정도, 부담도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내게 있어 가장 행복한 책 읽기 시절은 대학 다닐 때다. 미래에 대한 염려나 준비에도 신경 쓰지 않았고, 눈 앞에 닥친 수업 시간에도 개의치 않은 채 도서관 가장 후미진 자리에 앉아 앙드레 지드의 전원교향악, 좁은 문 등등을 읽어내려가던 그 때 그 시절만큼 행복하게 책을 읽었던 기억이 없다. 때마침 도서관에서 근로 장학생 자리까지 운좋게 받아낸 나는, 하루에도 몇 권인지 미처 세지도 않으면서 이런 저런 책들을 읽어가며 꽤 몽롱한 정신을 수습하지 못한 채 버스를 타고 집에 가던 기억이 아련하다.

그 때 내가 읽었던 대부분의 책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고등학교 때까지 읽지 못했던 명작 소설들이 대부분이었다. 앙드레 지드, 빅토르 위고, 플로베르, 에밀졸라를 시작으로(이건 당연히 전공하고도 관계가 있다 ^^) 헤르만 헤세, 어니스트 헤밍웨이, 도스토 예프스키, 톨스토이 그리고 조정래까지 나는 닥치는 대로 고전과 명작들을 읽어 냈고 아무래도 그 때의 책 읽기가 지금의 글 쓰기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나이를 먹고 어느 날인가, 그렇게 명작을 읽어대던 시절 낱권으로 구입했던 세계문학전집 중 한 권을 꺼낸 나는 채 열 페이지를 읽지도 못한 채 그 책을 덮어야만 했다.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조악한 글씨, 빽빽한 편집과 오래된 맞춤법, 게다가 나를 참을 수 없게 만든 일본식 번역의 흔적들(아쉽게도 우리가 읽은 수많은 명작들은 원작이 아닌 일본 번역서를 다시 번역한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 시대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겠지만)…

생각해보니 내가 읽었던 수많은 명작의 흔적에도 이런 기억들이 남아 있었다. 어릴 땐 모르고 읽었던 책들이 더 큰 활자와 시원한 편집, 깔끔하게 다듬어진 현대식 문체에 익숙해진 나에겐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존재로 다가온 것이다. 그리고 고전들은, 어릴 때 동화책으로 축약본을 읽거나, 수능 대비해서 어쩔 수 없이 읽는 책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게 명작을 잊고 지내던 얼마전, 눈에 번쩍 띄는 기사를 접했다. 민음사에서 세계문학전집 200권을 간행했다는 뉴스가 그것이다. 200권 발행 기념으로 디자인 에디션을 별도로 발표하기까지 했다는 뉴스를 보며(아, 사고 싶지만, 보관할 때가 없어서 포기했다는..), 당장에라도 서점에 달려 가고픈 욕심을 눌러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잠실의 한 서점에서 그 첫번째 책으로 '호밀밭의 파수꾼'을 골라 들고 있었다. 원래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사고 싶었는데 마침 서가에 없었다. 그래서 대타로 고른 것이 이 책.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된 비교적 최신작이라는 점도 이 책을 고르게 된 동기가 됐다. 아직까지 읽어본 적도 없었고.

민음사 셰계문학전집에 포함된 책들(화면 출처 : 민음사 홈페이지)


나는 새해가 되면 올해는 꼭 200권의 책을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하는데, 사실 1998년 이후로 이 목표는 한 번도 달성한 적이 없다. 적게는 몇 십권, 많게는 백 몇 십권 정도의 책을 읽는 것에 그치고 말았던 것이다. 숫자를 채워 보고 싶어서 맛의 달인 같은 만화책도 살짝 포함시켜 보긴 했지만 그건 왠지 좀 모양새가 안 나는 듯 해 200권에 포함시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맛의 달인이란 책이 우습다는 건 절대 아니다. 방대한 내용과 명쾌한 작가 의식, 진지한 스토리는 맛의 달인 101권을 읽고 그 후속타를 기다리게 만드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여튼, 올해 목표도 여전히 200권. 그런데 올해는 왠지 이 목표를 달성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이 200권이기도 하고, 이렇게 명확하게 한 권씩 사서 읽다 보면 목표가 더 눈에 잘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나는 두 권의 책을 읽었으니 시작이 좋은 편이다.

아련한 기억 속에 간직했던 이야기들, 아직 접해보지 못한 미지의 이야기들이 나를 기다린다. 읽은 책에 대해서는 일일이 독서 일기를 남길 생각이나, 그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닐 듯 해 장담은 못하지 싶다. 게다가 초등학교 6학년인 딸 아이도 한 번 읽어보겠다고 덤비고 있으니 부담도 만만찮다. 그런데, 기분은 참 그럴 듯 하다. 오랫만에 행복한 책 읽기에 빠져들고 있으니 말이다.

ps1> 읽기도 전에 책 200권을 어디다 쌓아두지? 라는 쓸데 없는 생각이 든다.
ps2> 솔직히 말하면 권당 5천원씩만 잡아도 100만원이다, 라는 생각도 빼 놓을 순 없었다.
ps3> 딸 아이가 아빠랑 똑같이 읽으면 컴퓨터(아이맥)를 사주겠다 했는데, 이건 또 어찌 수습할꼬. 여튼 대책없는 아빠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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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특별판

    Tracked from 김다희블로그  삭제

    세계문학전집 특별판 소개 민음사는 세계문학전집 발간 11주면 200권 돌파 기념으로 또 하나의 야심찬 기획을 독자들께 선보인다. 『거미여인의 키스』, 『햄릿』,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고도를 기다리며』,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변신ㆍ시골의사』, 『동물농장』, 『오만과 편견』, 『구운몽』, 『데미안』 등 독자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 10종을 뽑고 정병규, 안상수, 이상봉, 이돈태, 박훈규, 김한민, 슬기와 민, 박시영..

    2009/02/25 09:43
그라운드스웰. 형광색 그린이 선명한 표지가 눈에 띄는 이 책을, 나는 클라이언트와의 미팅 자리에서 처음 만났다. 이 책 꽤 괜찮던데요? 원래 경제, 경영, 마케팅 이런 분야의 책을 잘 읽지 않는 나지만, 클라이언트의 위력은 대단했다. ^^ 그래요? 그 날 오후 사무실에 들어와서 인터넷 서점을 뒤져 바로 주문했다. 일단 관심이 생겨야 뭐든 눈에 띄는 법일까. 그 뒤에서야 나는 이 책이 요즘 블로그 마케팅 하는 사람들에게 꽤 인기가 있는 책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라운드스웰이 뭐야? 땅에 나는 우물이야? 뭐 혼자 중얼거리면서 책을 펼쳤더니 저자들은 먼 곳의 폭풍에 의해서 생기는 파도라는 뜻의 그라운드스웰을 ‘기업의 울타리를 벗어난 곳에서 생긴 흐름이 큰 파도가 되어 기업에 밀어 닥치는 현상’이라고 정의했다고 나와 있다. 오호, 이게 그런 뜻일세… 여튼 새로운 용어를 일단 하나 배웠다.


이 책의 부제 - 네티즌을 친구로 만든 기업들 - 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은 웹 2.0으로 대표되는 인터넷의 흐름을 활용해 비즈니스에 유리하게 만든 기업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그 현상들을 설명한 책이다. 미니홈피, 블로그, 카페를 포함한 다양한 소셜 네트워크 솔루션들과 동영상을 중심으로 한 콘텐츠 사이트 등등이 소비자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으며 이러 인해 기업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 지를 다룬 책이다.

솔직히 이런 책을 읽을 수 있는 건 어찌 보면 행운이다. BMW, P&G, 야후, 네이버, 유니레버, 델, 베스트바이 같은 커다란 회사들이 많은 비용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경험했던 것들을 단돈 1만8천원에 사서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특히 저자들이 연구한 다양한 데이터와 결과들을 분석한 자료들은 웹 2,0과 소셜 네트워크의 트렌드를 이해하기엔 부족함이 없는 자료이고 이를 바탕으로 정리한 명제들은 하나씩 적어 놓고 따라해 봄직한 일임에 틀림 없다. 따라서 이제 막 기업이 소셜 네트워킹에 참가해 어떤 비즈니스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실무진은 물론 경영진들도 한 번쯤은 읽어볼만한 책이다. 만일 내가 대기업에 근무하는 마케팅 담당자라면, 담당 임원에게 꼭 선물하고픈 책이다. 

몇 가지 이야기들은 참으로 마음에 와 닿는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그라운드스웰은 일종의 권력 이동이다. 그라운드스웰이 힘을 갖게 되면서 기존의 권력자들은 파워를 잃어가고 이것이 그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무슨 말이냐고? 조중동이 왜 그렇게 블로거를 비아냥거리고 천대하는지를 설명하는 말이다. 콘텐츠를 생산하고 배포하는 것은 그들의 고유 업무였는데 이젠 누구나 생산하고 누구나 배포한다. 정보를 독점하다가 그 독점을 잃어버리면 절대 마음이 편할 수 없는 법. 또 다른 얘기 하나.

흔히 기술에서 시작해 전략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기술은 매우 빨리 발전하고 그것을 일일이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술보다는 그라운드스웰의 핵심, 관게를 맺는 것,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촛점을 맞춰야 한다.

플랫폼이 블로그던 홈페이지던, 카페든, 소셜 네트워크든 그런 건 부차적인 문제라는 얘기다. 굳이 블로그가 아니어도 기업이 콘텐츠를 배포하면서 고객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다는 뜻이다. 기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물론 기술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생각할 것이 있다는 얘기다 ^^) 그 안에 무슨 내용을 담고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는 뜻일게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 건 이 얘기다. 그라운드스웰은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다. 얼마나 기업들은 자신들의 정보를 컨트롤하고 싶어 했었나. 기업 뿐 아니라 정보를 가진 기관들은 모두 통제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이젠 원칙적으로 통제가 불가능하다. 통제가 불가능하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고객과 함께 즐기는 것일게다. 이거 참 마음에 드는 표현이다.

이렇게 마음에 드는 구석이 많고, 누군가에게 꼭 선물하고픈 책인데도 사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난, 찜찜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물론 책을 쓰다 보면 합당한 사례를 설명해야 하겠지만, 실제로 기업이 블로그든, 카페든, 홈페이지든 인터넷 마케팅 활동을 하다 보면 이론적인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상황들에 부딪히게 된다. 그리고 성공 사례를 분석하다보면 그 뒤에 숨어 있는 몇 가지 팩트들을 간과하게 된다. 그 팩트를 간과하고 성공 사례들을 읽을 땐 누구나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다음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유투브에 멋진 동영상을 만들어 배포한 기업이 있다. 그 기업은 배포 비용이 하나도 들지 않았고 아주 훌륭한 실적을 거뒀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선 기업들은 ‘멋진 동영상'을 만들야 한다. 말이 쉽지, 멋진 동영상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만들어지나. 적잖은 비용과 인력이 투입되어야 한다. 그렇게 엄청난 노력을 들여서 만든 동영상이 없다면, 배포 비용이 무료라는 건 별 의미가 없다. 실제로 유투브에 얼마나 많은 동영상이 올라오는가. 그들 모두 배포비용 무료의 탁월한 혜택을 보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사례들 중에서 컴플레인을 하는 고객들은 그야 말로 정당한 컴플레인을 하는 고객들이다. 그들은 정당한 컴플레인과 함께 합당한 요구사항을 내놓기 때문에 그들을 설득하고 우리 편으로 만드는 건 쉬운 일이다. 그러나 기업에 그런 고객만 있을 리는 없다. 다음과 같은 경우엔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일까.

백화점 프로모션 기간 중에 상품을 사면서 상품값 만큼 하는 사은품을 받아갔다.그리고 얼마 후 환불을 요청하면서 사은품은 가지고 오지 않았다. 사은품 없이 와서 상품은 손도 안댔으니 환불해 달라고 우기고 매장을 점유하고 있는 고객에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까.

신모델이 나오자마다 구모델에서도 그런 기능이 되게 해달라고 우기는 고객은 또 어떠한가. 내가 산 차에는 없는데 요번에 나온 새 차에는 있으니 내 차에도 그 기능을 넣어줘라, 아주 간단히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왜 안해주나, 라고 들이대는 고객에겐 뭐라 말해야 하는가.

솔직히 말해 이 책의 내용이 우리 기업 현실에 맞다고 할 수는 없겠다. 더더욱 한정된 마케팅 비용과 자산을 가지고 있는 중소기업에는 맞을 리가 없다. 결국 그라운드스웰은 다른 책들보다 훨씬 더 실천적인 방안을 제시했다고는 하지만, 현실에 적용하자면 여전히 원론에 가깝고, 이 책을 필요했기 때문에 읽은 독자들은 자신의 환경에 맞는 새로운 해답을 찾아야 할 게다. 하긴 원래 책이란 다 그런 거 아닌가. 그리고 해답은 있지만 정답은 없기에 비즈니스도 더 짜릿한 법일게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책이 남겨 준 한 마디는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라운드스웰은, 즐기는 것이라는 얘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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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공적인 기업 블로그 운영을 위한 열 가지 지침

    Tracked from 미도리의 온라인 브랜딩  삭제

    국내에 기업 블로그에 대한 성공 사례가 많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확실한 목표를 설정하고 자신만의 명확한 개성을 갖고 오랫동안 꾸준히 포스팅을 하는 것은 개인 블로거에게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24시간블로그에 온통 신경을 빼앗기고 매달리는데에 따른 심리적 피로감에다 맘 놓고 여행을 가거나 아프거나 하면 당장 타격이 오는데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없는 일이니 더 문제다. 그러니 심지어 어떤 블로거는 아이를 낳아도 온통 머릿속에 블로그 포스팅과 댓글..

    2009/02/21 22:50
  2. 대화는 끝없이 이어진다 : 그라운드스웰

    Tracked from 오선지위의 딱정벌레  삭제

    광고는 한 번 시작하면 끝이 나지만, 대화는 끝없이 이어진다. 이 말이 책에서 도도한 흐름, 그라운드스웰에 올라타야 할 당위성을 의미한다. 그라운드스웰, 네티즌을 친구로 만든 기업들 이미 인터넷을 통한 변혁은 진행되고 있고, 제어는 불가능하다. 기업은 어떻게 하면 그 속에서 살아남을 것인지를 고민해야한다.결론적으로 말하면 책의 모든 것이다. 더불어 말한다면 "지금이 그라운드스웰에 참여할때다." 변혁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 변혁에 참여해야한다. 이 책은..

    2009/03/04 15:03
  3. 그라운드스웰 - 먼 곳에서 시작된 파도의 이야기

    Tracked from 마루날의 讀書記錄|독서기록  삭제

    ★★★★☆ - 소셜미디어 시대에 기업의 상황에 대한 해석 그라운드스웰(Groundswell)의 사전적인 의미는 ground swell로서 (먼 곳의 폭풍 등으로 인한) 큰 파도, 여파를 의미하고 최근 미국에서는 여론의 고조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 책은 마켓리서치로 유명한 포레스트 리서치의 부사장 이였던 두 명의 저자가 지은 책인데, 다양한 리서치 자료를 소개하면서 현재의 기업의 상황을 잘 설명해 주고 있는 책이다. 그라운드스웰, 네티즌을 친구로 만든..

    2009/07/07 17:50
의미없는 삶을 마감하기 직전에 우연히 만난 한 사람. 단지 그 만남과 그 때 느낀 감정만으로도 그 한 사람을 그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물론 소설이니까 가능하겠지. 하지만 소설이란 원래 있을 법한 이야기를 하는 거라 하지 않았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 용의자 X의 헌신은, ‘헌신'이라는 제목의 낱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추리에 관한 소설이기도 하지만, 또한 한 남자의 굳게 닫힌 사랑에 관한 소설이다.


이혼 후 도시락 집에서 일하며 혼자 딸을 키우는 야스코에게 전 남편 신지가 나타난다. 클럽에서 일하다가 그럴듯한 신지의 모습에 반해 결혼했지만 사기꾼이자 폭력배인 그의 모습에 지쳐 도망치듯 이혼했음에도 신지는 끊임없이 야스코를 찾아 괴롭힌다. 그 날도 직장에 이어 집까지 쫓아와 야스코를 괴롭히던 신지. 그러나 딸 아이의 순간적인 행동으로 신지는 천벌을 받은 듯 죽게 되고 두 모녀는 살인을 저질렀다는 엄청난 현실 앞에 두려워한다.

이 때 문을 두드린 옆 방의 이시가미. 남 몰래 야스코를 좋아해왔던 이 수학 선생은 야스코 모녀를 대신해 시체를 처리하기로 하고 모녀에게 행동 지침을 준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과 달리 시체는 금새 발견되고 시체의 신원을 확인한 형사 구사나기는 야스코를 용의자로 점찍고 집요하게 추궁해 진실을 캐려 한다. 그러나 야스코의 알리바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확실하고, 구사나기는 용의자를 치고 들어가면 갈수록 완벽한 알라바이에 막혀 더 이상 수사의 방향을 찾지 못한다. 그게게 남은 건 직감 뿐. 

이런 와중에 난데없이 등장한 야스코의 마음을 흔들리게 만드는 또 다른 남자. 야스코를 대신해 시체를 느낀 이시가미는 배신감을 느끼기 시작하고, 이사가미의 대학 동기이자 천재 물리학자인 유가와는 이 살인에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음을 깨닫고 하나씩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추리 소설들이 반전에 그 묘미가 있는 법이긴 하겠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도대체 그 반전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소설을 끝까지 읽지 않고서는 알기 어렵다. 처음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을 풀어 놓고, 독자가 순간 방심하게 만드는 것도 그의 수법(!)이다. 용의자 X의 헌신에서도 독자는 이미 범인이 누군지 다 알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살인을 저지른 착한 주인공과 그를 돕는 남자. 그리고 그 사실을 직감으로 알고 있는 형사와 물리학자. 그들의 행적이 서로 얽히고 설키면서 눈 앞에 있는 명확한 사실은 드러날 듯 말 듯, 독자의 애간장을 태운다. 그러다 밝혀진 또 다른 진실.

역시, 한 번 손에 들면 놓기 쉽지 않은 책이다. 재미있기도 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에 혀를 내두른다. 아무래도 당분간 이 작가의 작품 몇 권은 더 읽게 될 것 같다.

PS>이 작가를 소개해준 토양이님은 용의자 X의 헌신을 꼭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나 역시 지금 그 말에 절대 동감하게 됐다. 일본에서는 이 책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데, 자막이 없이 볼 수 없는 나로서는 토양이님이 일본 가서 구해와 자막까지 씌워(!) 보여주기를 기대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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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용의자 X의 헌신 _ 히가시노 게이고

    Tracked from Zoominsky S2  삭제

    지난번 <사명과 영혼의 경계>를 읽고는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일본의 추리소설 작가에게 그만 푹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문학성을 따지기 이전에 소설이 갖는 재미를 다시 찾은 것 같아 한편으로는 조금 흥분이 될 정도였죠. 뉴질랜드는 로컬까지 포함해 약 14시간 이상 비행기와 공항에 있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그냥 갔지만 지난번 두 번째 비행에서는 나름 준비를 철저히 했죠. 영화 도 노트북에 담고 그리고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은 집중해서 읽을 수 있는 재미..

    2009/02/10 14:51
  2. 용의자 X의 헌신..

    Tracked from Fluctuat nec mergitur  삭제

    yes24에서 책 주문하다가.. 문화상품권 2장에서 금액이 좀 남길래.. 최근 개봉한 영화의 원작 '용의자 X의 헌신'도 구매.. 내용도 만만하고, 페이지도 만만해서.. 일욜날 아가들 주일학교 끝나기를 기다리며 후다닥 완독.. 책이나 영화나 간에 리뷰에는 자신이 없지만, 간단히 정리하자면.. 1. 추리소설의 클리셰(얼마만에 써 보는 단어인가)를 극복하려 노력 2. 1.의 이유로 소설의 구조는 새로움 3. 새로운 구조가 '추리로의 몰입'을 이끌어내지는..

    2009/04/27 16:18
“너 밖에 부탁할 사람이 없어"

한 때 연인이었던 여자가 어느 날 문득 연락해 이렇게 말했다면,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남자가 몇이나 될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새 추리소설, ‘옛날에 내가 살았던 집’은 1인칭 화자인 나에게 지금은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예전의 애인이 이런 뜬금없는 부탁을 하면서 시작된다. 오호라, 이거 시작부터 묘한 걸??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 때문에 추리 소설의 내용이 너무 뻔할 것 아닌가 예측할 필요는 없다. 둘의 현재 위치와 관계는 이 소설에서 그리 중요한 의미가 아니므로.


이렇게 단정해 버리면 이 책에는 인류 최대의 스토리 텔링 주제인 ‘남녀상열지사’가 나오지 않는다고 공표해 버린 셈이 되니, 벌써부터 흥미가 반감되는 사람들도 있을 게다. 그러나 어디 인생사 남녀상열지사가 전부는 아닐터. 남녀상열지사를 일으킬 것도 아니면서 도대체 왜 이 여자는 자기가 냉정하게 떠나온 남자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일까. 그런데 남자 주인공은 의외로 솔직하다. 은근한 기대를 갖고 있다고 스스로 밝혔으니 말이다.

하지만, 얘기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른다. 그녀는 얼마전 돌아가신 그녀 아버지의 유품 중에 나와 있는 허름한 열쇠와 지도 한 장을 가지고 나타난 것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하나도 없는 자기에게 이 열쇠와 지도가 틀림없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라며 기억을 찾기 위해 동행해 주기를 요청하는 그녀에게 주인공인 나는 기대도 꺠진 데다(이래서 남자들이란 참… ^^) 기분도 썩 좋지 않아 좋게 사양하려 한다. 하지만 그 때 눈에 띈 그녀 팔목의 상처. 무슨 사연이 있으리라 짐작한 나는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하고 그녀와 함께 열쇠의 비밀을 캐러 떠난다.

이 부분, 열쇠의 집을 찾아가는 묘사를 읽으면서 나는 우습게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떠올랐다. 왜 그 첫 장면, 이사가는 부모와 함께 길을 잃고 헤메는 모습 말이다. 길이라고 믿기 어려운 비포장 도로를 헤메며 어딘가를 찾는 그 모습. 그렇게 비스무레한 숲 속을 헤쳐 결국은 지도에 있는 집을 찾게 되고, 그 열쇠가 지하실의 출입문을 여는 열쇠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렇게 들어간 별장 같은 집은 뭔가 이상하다. 현관은 아예 폐쇄되어 있어 지하실로 출입할 수 밖에 없고, 모든 시계는 11시 10분에 맞춰져 있으며 23년 전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고스란 하지만, 뭔가 빠진 것 같은 그 어색함… 그 집에서 두 사람은 그녀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집안 구석 구석을 뒤지지만 좀처럼 도움이 되는 것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한 일기장. 일기장을 통해 그들은 그 집의 비밀과 그녀의 기억을 하나씩 찾아가는데…

뭐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결론은 다 밝혀진다. 그것이 해피엔딩인지 아닌지는 읽는 사람 스스로 판단할 문제다. 그리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소설 ‘악의'처럼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은 누가 범인이냐라는 목적보다는 왜 그렇게 되었을까 라는 이유에 더 촛점을 맞춘다. 그리고 그 이유란 것이 항상, 도저히 예측할 수 없을 정도의 반전이다.

이야기를 풀어 가고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단 두 명이다. 어쩌다 등장하는 엑스트라 같은 인물을 빼고 이 책은 두 사람이 수수께끼 같은 집 안에서 모든 문제를 풀어간다. 연극으로 치면, 최소한의 배우가 최소한의 공간에서 연기를 펼치는 단막극 같은 셈이다. 단 두 명, 그 좁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자칫하면 지루한 이야기로 흐를 수 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지루할 틈 없이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리고 독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말에 맞닥뜨린다.

이 책을 포함해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총 두 편 읽었다. 하나는 당연히 이 책일테고 또 하나는 앞서 언급한 ‘악의’다. 냉정하게 비교하자면 솔직히 이 책보다는 ‘악의’가 좀 더 재미있긴 하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토양이님은 이 작가의 다른 소설 ‘용의자 X의 헌신’을 꼭 읽어야 한다고 강조하니 아마 그 책이 더 재미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이미 추리소설 마니아들에게 히가시노 게이고는 충분히 명성이 있는 작가일테지만, 나처럼 일본 문학이나 추리 문학을 많이 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히가시노 게이고는 꼭 한 번 접해 볼 만한 작가라 권유할 만하다. 뭐, 항상 주장하는 바이지만, 소설이나 영화나, 일단 재미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말이다. 일단 읽으면 손에서 떼지 않고 끝장을 봐야 하는 책. 이 책 역시 그 중에 이름을 올릴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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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텐로이의 생각

    Tracked from bartenroy's me2DAY  삭제

    i4r님 님의 #followFriday 에 감사! #booksoda 에 더욱 매진! 히가시노 게이고의 명성에 기대 나오자 마자 바로 구입한 '옛날에 내가 죽은 집[2009_032]' 그러나 살짝 기대에 못 미쳐 아쉬운! http://tr.im/wO3x

    2009/08/21 13:56
틀림없이 세기의 커플 중 하나였을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이혼한 데는 제3자가 도저히 알 수 없는 백만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부부가 동반 출연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 니콜 키드먼이 다른 남자와 뜨거운 정사 씬을 벌인 이후 둘의 관계가 멀어졌기 때문이라고들 했다. 아무리 배우이고 아무리 연기지만,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벌이는 애정 행각을 절대 좋게 볼 수는 없을 것이라는 추측일 게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면 그저 배우로서의 일이지만, 이게 한 번 질투라는 감정으로 포장되면, 그 결과는 뻔한 일이다(톰 크루즈 조금 있으면 한국 온다는데… 설마 내 글을 보시지는 않겠지 ^^).

엉뚱한 예를 들긴 했지만 모름지기 질투란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사람의 심리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쌍화점은, 질투에 이은 광기, 그리고 결국엔 아무도 행복하지 못한 파국에 이르는 전형적인 멜로물이다. 문제는, 파국이 날 걸 예상하긴 하는데 도대체 어떤 식으로 날 것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예측하기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영화를 이끌어 가는 요소가 질투에 빠진 사람의 행동이었으므로, 어쩌면 그런 전개는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결말을 예측할 수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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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 영화를 보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야하다(!)는 세간의 평가 때문이다. 미인도는 보지 못했지만, 미인도보다 수위가 높다고 했다. 수위가 높다라니. 이 정도면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결국 이 영화 야해!라고 홍보하기 시작한 건 일단 먹힌 셈이다. 야하다는 평을 듣고 영화를 보러 온 사람이 나 한 명은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초반부터 야한 장면이 들이닥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게다가 야하다는 선입견 때문에 화면의 품질은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왠걸. 어유, 예상 외로 화면 고급스러운데? 그런 느낌이 확 들어왔다(사실 이래서 처음 기대치가 높고 낮은 것에 따라 평가는 극과 극이 될 수도 있겠다). 그리고 드디어 등장한 두 남자의 성애 씬. 남자와 남자의 성애 장면이 쇼킹했다는 건 인정해야 겠다. 오죽하면 뒤이어 나오는 홍림과 왕후의 정사씬은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게 느껴졌을 정도니까. 첫 부분에 나온 장면이 쇼킹하면 아무래도 뒤로 갈수록 충격이 덜해지는 건 당연한 일일 게다. 물론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다른 데서 보기 힘든 장면이 스치듯 지나니, 수위가 높다는 건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솔직히 내가 제일 야하게 봤던 서양 영화를 꼽으라면 마돈나와 윌리엄 디포가 나왔던 육체의 증거를, 두번째론 샤론스톤의 원초적 본능을 꼽을 수 있다. 한국 영화를 꼽으라면, 이건 두 말할 것 없이 무릎과 무릎 사이다. 이들 영화들의 대부분이 노출의 수위가 높아서가 아니라(어느 정도 수위가 있기는 하지만 ^^) 당시에 내가 받는 심리적인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수위 보다는 심리적인 쇼킹 강도가 더 영향을 미친다는 걸 얘기하기 위해 별 쓸데 없는 얘기를 다 했다 ^^).

쌍화점은 야하다. 그러나 야한 걸로 승부하지 않는다는데서 난 이 영화가 더 마음에 들었다. 어쨌거나 영화든, 소설이든 재미있어야 하고, 재미있으면 그만 아닌가. 홍보를 통해 익히 알려진 찐한 정사 씬과 적절한 타이밍에 섞어 넣은 액션 씬,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꽉 차여 진행되는 스토리는 영화가 상영되는 두 시간 동안 관객의 시선을 끌어 모은다.

감정을 이입하는 대신 대사의 깊은 곳(!)까지 이해하는 관객들이 중간 중간 실소를 흘리기는 하지만(이건,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직접 영화를 봐야 알 뿐!) 멜로와 스릴러가 적절히 결합한 듯한 느낌이 꽤 짜릿하다. 여럿이 가서 두루 두루 보기는 좀 그렇겠지만 말이다. ^^

PS> 조인성, 진짜 드럽게(!) 잘 생겼다.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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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엇갈린 반응으로 호기심 자극할 '쌍화점'

    Tracked from 토토의 느낌표뜨락  삭제

    새해들어 남편과 함께 본 '쌍화점' 감상후기 올리겠습니다.^^ 왕(주진모), 왕의 호위무사 홍림(조인성), 왕후(송지효)◀이들의 삼각관계를 본 우리부부의 감상후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한 이들의 삼각관계가 예사롭지 않았기에 흥미로울 수 밖에 없는 이유 첫째, 일반적으로 알려진 여자하나에 남자 둘, 혹은 남자하나에 여자 둘, 이런 삼각관계가 아니란 점 둘째, 남자하나에 남자대 여자의 삼각관계란 점에 타인도 아닌 부부가 한 남자를 사랑한점 셋째, 궁..

    2009/01/08 15:28
  2. 쌍화점에서의 동성애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

    Tracked from 일본과 한국, 그리고 광장시장(?)  삭제

    하나의 영화로 세 번의 포스팅을 하게 하다니-_-;; 어떤 의미로는 참 대단한 영화입니다. 새해 첫 날에 2009년 첫 영화로 쌍화점을 봤습니다. 그리고 2009/01/03 - 쌍화점...동성애와 양성애와 불륜(?)은 좋게 끝나지 않는다?라는 일종의 감상문(?)을 썼지요. 그러고 나서 얼마 후에 후배랑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궁금한 점이 생겨서 순전히 넘치는 호기심에 2009/01/07 - 쌍화점 공민왕과 홍림의 동성애 누가 공이고 누가 수였을..

    2009/01/08 20:23
  3. 쌍화점 _ 사랑과 질투와 분노의 끝까지 치닫는 치정극.

    Tracked from the Real Folk Blues  삭제

    쌍화점 (2008) 사랑과 질투와 분노의 끝까지 치닫는 치정극 유하 감독의 신작 <쌍화점>은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 상당히 걱정과 우려가 되었던 작품이었다. 일단 시사회를 통해 먼저 접한 전문가들의 평도 좋지 않았고, 개봉 뒤 만난 일반 관객들의 평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좋지 않다기 보다는 '최악'이라는 얘기까지 들려올 정도였는데, 원래 이런 타인의 평에 좌지우지 되는 편은 아니지만 어쨋든 본래 보다는 훨씬 낮춰진 기대치를 가지고 극장을 찾..

    2009/01/08 23:36
  4. <쌍화점> - 영혼이 결여된 차디찬 치정사극

    Tracked from 진사야의 비밀스러운 자유공간 ~ Secret Twilight Garden ~  삭제

    보통 어떤 멜로드라마(혹은 그것을 표방하는) 영화와 마주했을 때, 그 내용 자체에서 어떤 새로움을 느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물론 영화 내부에 서린 아이디어가 조금씩 신선하게 다가오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 이야기의 본질 자체에서 새로움을 찾는 경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기성 멜로 영화들이 이미 쌓아 놓은 어떤 영화적 위치이기도 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서로에 대해서 알고, 그리고 사랑하는 과정을 담은 이 세상의 모든...

    2009/01/09 15:01
  5. 쌍화점이 남긴 만족과 실망 2종 세트

    Tracked from 깐깐한 사람들이 전하는 웰빙이야기  삭제

    쌍화점이 남겨준 만족감과 실망감 2종 세트 요즘 가장 흥행하고 있는 영화인 쌍화점을 보고나서 “만족감과 실망감을 동시에 느꼈다.”라고 말하면, 쌍화점을 본 수많은 관객들의 마음을 표현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영화를 감상하지 않은 남녀 관객들에게 쌍화점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여성들에겐 조인성이라는 영화배우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남성들에겐 수위 높은 정사씬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심어주는 영화가 아니었을까? 왕과 그 왕을 지키..

    2009/01/12 17:35
  6. 박찬호의 일화를 떠올리게 한 &lt;쌍화점&gt;

    Tracked from 알콩달콩 섬 이야기  삭제

    세 명의 엇갈린 사랑의 운명이 시작되고나는 한 인간을 진정 사랑하고 있을까? “네가 게 맛을 알아?” 한 때 유행어로 분류됐던 모 광고의 카피다. 사랑을 주제로 다룬 영화 ‘쌍화점’은 “네가 사랑을 알아?...

    2009/01/16 13:35
사람은 죽으면 6단계의 과정을 거쳐 세 명의 천사 앞에서 마지막 심사를 받는다. 사는 동안 세상에서 선을 베풀어 600점을 얻으면 천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고, 600점이 안되면 다시 사람이나 동물, 식물 등으로 환생해 점수를 채워야 한다. 점수를 채울 때까지 사람은 몇 번의 생을 계속해서 살아야 한다. 게다가 새로운 생을 선택할 수 있다. 문제는, 이전 생의 평가 결과에 따라서 선택할 새로운 생의 범위가 결정된다는 것. 과거의 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과거의 생과 연결되는 또 다른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600점을 채울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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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천사들의 제국’은 타나토노트의 속편이다. 타나토노트에서는 사람들이 죽음 뒤의 세계를 탐험하는 이야기였다면, 이번엔 죽음 뒤의 세계에서 사람의 세계를 관리하는 천사의 이야기다. 타나토노트의 주인공 미카엘 팽송이 여기서도 주인공을 맡았다. 감히 인간이 사후세계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신들의 분노를 사 죽게 된 미카엘 팽송이 이번엔 천사가 되어 사람들을 관리하게 된다는 뭐 그런 얘기다.

누차 강조하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은 몹시 황당하면서도 아 그럴 수 있겠다 싶은데 매력이 있다. 이것은 그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단순한 상상에 따른 것이 아니라 풍부한 과학적, 철학적 지식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에 대한 지식은 이미 정평이 나 있는 데다가 각종 신화의 내용을 분석하고 그 사이의 연관 관계를 만들어낸 그의 창작력은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미카엘 팽송은 원래 600점을 채우지 못해 다시 인간으로 환생해야 하나, 미카엘의 수호 천사인 에밀 졸라의 강력한 말빨에 힘입어 천사가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그는 자신의 가이드 천사로 에드몽 웰즈를 만나게 되고, 그가 괸리해야 할 세 명의 사람을 배정 받는다. 그 세 명의 출생에서부터 성장, 살아가는 과정에 끊임없이 개입하고 그들이 600점을 채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미카엘의 미션. 그들 중 누군가가 600점을 채우면 미카엘에게도 뭔가 보상이 생긴다니, 구미 당기는 미션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미션으로만 끝나면 좀 심심한 법. 여기에 다시 천사로 환생한 라울을 만난 팽송은 천사 세계의 마지막 장벽인 제7장벽 이후에 관심을 갖게 되고 금지된 영역을 찾아 탐험을 나서는 한편, 자신이 관리해야 할 세 명의 사람들을 관리하는데 열정을 기울인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어 천사가 그에게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것도 그리 쉽지는 않은 일. 게다가 라울의 끊임 없는 유혹으로 그는 결국 천사들의 세계 저 너머를 탐험하는데 참여하게 된다.

결국, 미카엘은 그 너머에 있는 뭔가를 발견하게 되지만 세 명 중 한 명의 죽음을 방치하게 되고 그 사람의 영혼과 맞부딪혀 싸우기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미카엘은 과연 호기심과 미션을 다 만족시키면서 또 다른 상급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까. 뭐, 결론부터 말하면 상급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그 상급 세계의 이야기가 다음 편 소설인 ‘신'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짜임새 있는 내용과 기발한 상상력 때문에 이 책 역시 손에서 놓기 힘들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들의 이름이 등장하고, 또 다른 역사적 인물들이 사후 세계에서 특별한 미션을 받아 수행하고 있다는 소재들도 흥미를 더하는 부분이다. 거기에 비록 천사의 관리를 받고 있지만 자유 의지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변해가는 과정도 꽤 재미있다.

신 때문에 타나토노트와 천사들의 제국을 읽긴 했는데, 오랫만에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읽어낸 소설들을 찾았다는 생각에 꽤 흐뭇하다. 그런데다가 처음엔 좀 데면데면했던 신을 이제 다시 읽을 생각을 하니 은근한 기대감도 쌓인다. 오직 바라는 건, 신의 후속편들이 빨리 나와주기를! / FIN

2008/12/26 - [미디어 다시 보기] - [책] 신 - 나도 언젠가는 신이 될 수 있을까
2009/01/06 - [미디어 다시 보기] - [책] 타나토노트, 죽음 뒤엔 어떤 세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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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죽음 뒤엔 어떤 일이 있을까? 저마다 주장하는 바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종교에서는 반드시 내세가 있고, 그 내세를 통해 인간은 심판 받는다고 말한다. 과연 내세는 존재할까? 심판은 존재할까? 죽음 뒤에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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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타나토노트는, 죽음 뒤에 있는 또 다른 세상을 이야기로 풀어낸 이른바 베르나르 베르베르식 사후세계를 다룬 소설이다. 게다가 이 사후세계를 산 자들이 직접 탐험한다는(책 제목인 타나토노트는 이렇게 사후세계를 탐험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조어다) 아주 솔깃한 소재를 그럴 듯한 논리로 풀어낸다. 황당하면서도, 이거 꽤 말이 되는 걸?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뭐 요약하면 책은 이런 내용이다.

프랑스의 대통령이 죽음 직전에 다시 살아났다. 죽음 직전에서 되살아난 대통령은 사후세계의 일면을 보았고, 자기가 죽음 직전에서 다시 돌아온 것처럼 이런 세계를 탐험할 방법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장관 한 명을 족쳐(!) 이 연구를 시작하게 했고, 여기에 라울과 미카엘 팽송이라는 두 주인공이 참여하게 된다. 두 사람과 그들의 조수인 미모의 간호사, 그리고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자원한 사형수들은 죽음의 세계에서 다시 돌아오는 방법을 연구하게 되고 모든 소설이 다 그렇듯이 몇 번의 실패 끝에 결국 성공하게 된다. 이 성공을 계기로 전 세계는 사후세계의 탐험에 경쟁적으로 돌입하게 되고 자연스레 사후세계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난다.

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한 까닭에 사후세계가 블랙홀 안 쪽, 우주 은하계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낸 라울과 미카엘. 몇 겹의 장막으로 이루어진 사후세계의 비밀이 밝혀지면 밝혀질 수록 사후세계는 점점 더 어지러진다. 사후세계가 관광지가 되고, 장사꾼들이 들끓으며, 결국엔 이 세계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이 일어나기까지 한다. 인간의 탐욕은 사후세계 마저도 소유하고, 망가뜨리려한다. 이를 지켜보는 신들, 멈추지 못하는 인간들의 호기심에 그들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결말을 예상할 수 없는 채로, 책장은 빠른 속도로 넘어간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가리켜 천재 작가라고들 한다. 이 책에서 그가 얘기를 풀어내는 방식을 지켜 보고 있노라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고, 어떻게 밝혀진 사실과 그 생각들을 엮어나가는지를 읽다보면, 정말 그가 천재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이미 몇 명의 성인들이 신들의 세계를 탐험했고 그것들을 얘기해줬는데 왜 인간들은 믿지 않는지, 라고 말해주는 신들의 얘기를 읽다 보면, 이것이 소설인 것 조차도 까먹은 채로 아하~ 그런 감탄사가 나올 정도니 말이다.

타나토노트 초판은 1994년에 발행됐다. 그러니 이 책은 신간이라기 보다는 이미 오래 전에 나온 책이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팬이라면 이미 몇 번씩 읽었음직한 소설이다. 그런데 난데 없이 이리 오래된 소설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이 소설이 최근 그의 신작 ‘신'의 최초 연작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신’에는 타나토노트와 그 후속편인 천사들의 제국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그대로 등장하고, 작가 역시 ‘얘네들 잘 알지?’라는 식으로 얘기를 풀어가기 때문에 전작에 대한 정보가 빈약한 상태에서는 ‘신’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다. ‘신'을 제대로 읽으려면 타나토노트 정도는 읽어줘야 한다는 얘기다.

어쨌거나, 타나토노트를 읽으니 자연스레 이 책의 후속편인 천사들의 제국을 찾게 됐고, 천사들의 제국까지 다 읽은 후에는 신을 한 번 더 읽게 될 것이다. 모름지기 사람에겐 아는 만큼 더 보이는 법이다. 신을 지금 보다 두 배 더 재미있게 보려면, 타나토노트 정도는 꼭 한 번 읽어볼만 하다. 신이 아니면 또 어떠랴.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북 리스트에 담아둘만한 그런 소설이다.

PS> 눈치채셨겠지만, 다음 번 책 리뷰는, 천사들의 제국이 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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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네트란 공연을 보러 가자길래, 수퍼마리오나 마리오파티와 무슨 관계가 있냐는 썰렁한 질문을 했다가 본전도 못 건졌다. 명동 유네스코 회관 건물에 자리한 명동아트센터. 옛날엔 펑키 어쩌구 전용 극장이었던 듯 한데, 새롭게 개보수를 하고 공연 전문 소극장으로 탈바꿈한 듯 하다. 누군가에게서 선물 받은 티켓으로 펑키 어쩌구를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공연 제목은 생각 안 나는데, 정성한인가, 연출자 이름은 생각난다. 컬트 트리플 출신이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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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모르고 갔는데, 비보이 공연이란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저주 받은 몸치인 나는, 춤 잘 추는 사람들이 마냥 부러울 수 밖에 없지만, 그 부러움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춤 공연 같은 건 아예 보러 갈 생각을 안 했다. 그러다 엉겁결에 보러 간 마리오네트가 비보이 공연이라니. 별로 머뜩찮은 표정을 하고 공연장에 들어갔다. 눈치를 보니, 주변은 죄다 파릇파릇한 이십대 커플들이다. 얼핏 봐도 내가 나이가 제일 많은 듯(요즘 들어 이런 경우가 종종 늘어나니, 젠장 가슴아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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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시작됐다. 처음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렇게 익숙하면서도 자연스런 모습은, 역사가 짧은 공연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다. 자연스럽게 박수를 유도하고 관객들을 끌어들인다. 물론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이십대라는 점도 작용했겠지만 관객들은 서서히 공연에 몰입한다. 관객이 빨리 공연에 몰입할 수록, 관객도 즐겁고 배우도 즐거운 법이다.

간간이 유머를 던지며 춤으로 공연은 진행됐다. 묘기에 가까운 춤 솜씨를 보이는 배우들에게 찬사를. 중간 중간 삽화를 보여주며 스토리를 설명하는 방식도 불편하지 않았고 신나는 춤 사위에 박수를 치며 공연을 즐겼다. 사람들에게 사랑 받기 시작한 인형들, 소녀를 사랑하기 시작한 인형. 1부와 2부의 막이 어느 틈에 흘러가고 3부 마법사의 공연이 시작됐다. 온통 검은 무대 위엔 흰 옷 차림의 마법사. 그의 손이 펼쳐지면서 마스크들이 춤을 춘다. 아, 이 공연 나 TV에서 봤는데!!



검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현란한 형광 마스크의 춤은 감탄을 금하기 힘들다. 자전거를 만들고, ET를 만들어 내는 그들의 유머에 웃고 박수치며 환호할 수 밖에. 게다가 더 기특한(!) 건, 그들은 고고한척 하며 형광 마스크의 비밀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다. 갑자기 켜지는 환한 무대, 그와 동시에 드러나는 형광 마스크의 비밀. 관객은 배를 잡고 웃는다.


손풍금의 애절한 멜로디에 맞춰 인형들이 춤을 춘다. 힘차면서도 절제된 모션으로 애잔한 느낌을 주는 그들의 춤. 공연의 시놉시스는 결코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그들은 모두 춤을 출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는 듯 뜨거운 열정을 무대에 쏟아낸다. 그들의 열정에 관객들은 박수와 환호 밖에 보낼 것이 없다.

실제 공연 시간은 약 70분 정도 될까. 나머지 20분은 관객과 함께 즐기는 그들의 잔치다. 공연 중에 보여주지 못했던 신나는 춤들을 몸을 던져 보이고, 신기에 가까운 비트박스로 흥을 돋군다. 관객 모두 일어서 박수를 치고 마무리를 즐기니, 이건 파티다. 그리고 젊은 배우들만의 특별한 서비스. 공연을 마치고 나가는 관객들에게 포토 타임을 제공한다. 왜 좀 유명한 배우들은 이런 서비스 안 해주는 것일까 ^^

재미있다. 춤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도 박수를 치고 즐길만하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듯. 초등학교 5학년 딸 아이도 한참을 웃으며 같이 봤다. 이만한 비용으로 이만한 공연을 보기란 그리 쉽지 않을 듯. 공연을 보는 중간 중간,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비슷한 비용에 재미있게 봤던 점프가 생각났다. 역시 뭐든 하나 독특한 볼 거리가 있는 공연은 절대 손해본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법이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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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도록 갈증이 나서 물을 찾는 것처럼, 가끔 그렇게 책을 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그 많은 책들 중에서 도대체 무슨 책을 사야 할지 막막하기란 말도 못한다. 정작 갈증이 나서 마트에 들어 갔는데 음료가 너무 많아 뭘 마실지 몰라 괜히 궁시렁 거리는 꼴이다. 이럴 때 가장 쉬운 방법은 베스트셀러를 살펴보는 것이다. 남들이 많이 사는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고, 설령 속았다 손 쳐도, 나 아닌 다른 사람들도 같이 속은 거니 좀 덜 억울한 셈이니까.

그렇게 책이 사고 싶어 인터넷 서점을 어슬렁 거리다가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발견한 책이 ‘신’이다. 이게 뭘까 하고 클릭해봤더니, 세상에, 베르나르베르베르다. 이 정도면 사실 고르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나는 어느 틈에 신1과 신2를 장바구니에 담았고 결제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튿날 즈음, 책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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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소설은 손에 잡는대로 바로 읽는 것이 내 습성이다. 드문 드문 읽어서는 발동도 안 걸리고, 내용도 이해가 안되고, 그러다 보면 다 읽지 못하고 책장 속에 처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 베르나르베르베르의 다른 책들과 달리 처음에는 진도가 영 안 나갔다. 그럴 수 밖에. 이 책은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전작 타나토노트와 천사들의 제국에 이은 속편 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개미에 등장하는 인물도 나온다. 그러니 앞에 두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처음에 영 어색할 수 밖에. 이 인물에 대한 얘기는 내가 지난 번에 해줬잖아 라는 식으로 내용을 풀어가는 작가 앞에서, 그의 전작 시리즈를 읽지 않은 독자들은 당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솔직히 난 꽤 오래전 타나토노트를 읽었음에도, 초반에 적응하기가 좀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초반에 쉽게 몰입하지 못하기는 했다(아, 여기엔 연말 술자리 여파도 물론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주말에 작정하고 책을 붙들었더니, 역시 초반의 어색함만 이겨 내면 베르나르베르베르의 다른 책들처럼 술술 넘어 가기 시작했다.

신의 주 내용은 이거다.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전작 소설에 등장했던 주인공들이 이번에는 신이 되는 일에 나섰다. 나섰다기 보다는 신들이 그들을 선택했다. 144명의 후보에는 주인공인 미카엘 팽숑을 비롯해 개미에서 절대 잊지 못하는 그 이름 에드몽 웰즈, 그리고 빅토르 위고, 생텍쥐베리 등등 프랑스에 살았던 유명 인사들이 꽤 등장한다. 심지어 마타하리와 마릴린 몬로까지. 후보생 144명은 모형 지구를 가지고 갖은 생물에서부터 인간까지 만들어 그들을 양육해 보면서 신이 되는 공부를 한다. 그 와중에 누군가 후보생들을 하나씩 죽이기 시작하고 후보생들은 점점 조여오는 위협에 두려움은 커져 간다. 과연 후보생들을 죽이는 자는 누구이며, 누가 종국에 신이 될 것인가.

약 올리려고 이렇게 쓴 것이 아니다. 신은 원래 3부작인데, 이번에 번역되어 나온 1,2는 1부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신1,2권을 다 보고 난 후에는 마치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찜찜함이 남아 있다는 말이다. 좀 더 유심히 설명을 보았다면 나머지 시리즈가 다 나왔을 때 샀을 텐데, 서둘러 산 것이 오히려 원망스럽기도 하다.

결론을 말하면 재밌다. 그러나 앞에서도 썼던 것처럼 베르나르베르베르와 친하지 않은 독자라면, 그의 작품을 읽지 못한 독자라면 초반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게다. 반면, 개미 시리즈라도 한 번이라도 봤던 독자들에겐 꽤 재미있는 소설이 될게다. 나는 신의 나머지 2부작을 기다리기에 조급한 나머지 타나토노트와 천사들의 제국 시리즈도 주문해버렸고 이번 크리스마스 휴일에 타나토노트 시리즈를 다 읽어 버리기까지 했다. 타나토노트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전해드리기로. 어쨌든 다음 시리즈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은근한 재미가 될 듯하다. 베르나르베르베르 참 마음에 드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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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 -베르나르 베르베르

    Tracked from 김재호의 디지털보단 아날로그  삭제

    신 1 -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열린책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새로운 이야기이다. 나는 컴퓨터 공부를 시작한 이후로는 이런 종류의 책들을 전혀 보지 않는데, 그래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은 나올 때 마다 꼭 본다. 나는 그가 쓴 거의 모든 책들을 읽었는데, 그 중에서 '뇌'가 가장 재미있었다. '뇌'는 내가 읽은 그의 첫번째 책이었는데, 그래서 그 책을 가장 재밌게 봤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상상력. 그리고 다른 공간에..

    2009/01/05 21:25
대학을 졸업하고 첫 겨울, 엄마가 사준 바바리 코트를 멋내어 입으면서 이런 소망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바바리 코트 주머니엔 시집 한 권 넣어가지고 다녔으면 좋겠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연극이란 걸 놓치지 않고 봐야지. 그래, 아직도 기억 난다. 그 때 내 바바리 코트 주머니엔 지금은 고인이 되신 고정희 시인의 ‘아름다운 사람하나’가 들어 있었고, 여의도 백화점 건물에 있었던, 학교 주변 식당에서 나눠주는  할인쿠폰을 가지고 가면 1천원에 볼 수 있었던 연극 표가 몇 개 있었을 게다. 

십 오년도 더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때 소망은 내 다른 꿈들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없지만, 바바리 코트 속에 들은 시집과 연극에 대한 애틋한 느낌 만큼은 내 감정의 밑바닥에 조용히 깔린 로망이 되었다. ‘연극을 보는 일’ 정도는 주머니에 시집 한 권 넣어가지고 다니는 일 정도로 부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도대체 연극이란 걸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도 않으니…

얼마 전, 무작정 연극이 보고 싶어 대학로엘 갔다. 다행스럽게도 사랑티켓을 파는 곳에서는 대학로에서 현재 공연 중인 연극들의 리스트를 볼 수 있으니 사전 정보가 없이 무작정 갔다 해도 다리 품을 많이 팔 일은 없었다. 그런데, 티켓 부스 입구가 영 소란 스럽다. 극장은 많고 관객은 부족해서일까. 연극을 보려는 사람들에게 자기네 연극을 홍보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여간 시끄럽다. 그런데 이거 살짝 불쾌하다. 문화 상품을 파는 사람들에게 호객 행위니, 삐끼(!)니 하는 말을 붙이고 싶지는 않지만, 솔직히 그들의 행동은 그것과 별 다름 없었고 연극을 골라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그들의 접근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어쨌든, 수많은 권유(!)를 무시하고 몇 개의 연극 브로셔를 골라 순서 대로 창구에 디밀었다. 표가 없는 것이면 없다 할 터이고, 있는 것이면 있다 하겠지. 창구에선 무슨 회원 가입을 했냐, 26세(정확한 건 기억이 안 나지만) 이상이냐 이런 걸 물어보던데, 해당되는 사항이 하나도 없어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더니 그냥 제 값 다 받고 표를 팔았다. 괜히 깎아주는 건 재미 없는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대학로를 좀 돌아다니다가 표를 산 극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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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 소극장이 그렇게 만은 줄은 미처 몰랐다. 온갖 군데서 참 다양한 연극들이 공연 중이고, 그 중에는 유명한 배우들이 나오는 연극도 꽤 있었다. 아, 다음엔 저런 걸 한 번 볼까? 인터넷에서 미리 정보를 좀 보고 와야겠어, 그런 수다를 떨며 극장 앞에 다다랐다. 사랑티켓 부스에서 산 티켓은 매표소에서 다시 좌석 번호 붙은 걸로 교환을 해야 한단다. 그럴 거면 굳이 거기서 살 이유가 없었는데, 그냥 극장 와서 바로 샀으면 좌석 번호 붙은 티켓을 바로 받을 텐데, 도대체 이거 뭐하자는 플레이지?? 그런 생각을 했다. 역시 정보 없이 무작정 가면 팔다리가 고생하는 법이다.

참, 내가 고른 연극은  뉴보잉보잉이다. 브로셔에 적혀 있는 홍보 문구에 따르면 대학로 최고의 바람난 로맨틱 섹시 코미디극이란다. ^^ 아저씨가 고르기에 딱 좋은 제목이라고?? 천만에, 연인이라면 꼭 봐야 할 작품이란다. 하긴, 나중에 극장 안에 들어가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관람객 중엔 내 나이가 제일 많은 건 아니었을 지라도, 꽤 많은 편인 건 틀림 없는 사실이었다.

공연이 시작됐다. 그런데 초반, 영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원래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오페라든(이건 본 적이 없지만) 이런 것들은 초반엔 좀 어색한 법이다. 관객도 배우와 극장에 익숙해지고 동화되어야 비로소 재미가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데 살짝 따로 노는 느낌이다. 배우는 오버하는 듯 싶고, 관객은 좀 쌩뚱 맞아 하는 듯 싶다. 게다가, 정말 웃기지도 않는 장면인데 뒤에서 끊임 없이 아줌마 목소리로 흐흐흐 웃어대는 관객 떄문에 난 도저히 연극에 집중하질 못했다. 그 쪽을 힐끔 힐끔 보는 사람들이 꽤 있었으니 그건 내 문제만은 아니었을 게다. 오죽하면 내가, 돈 받고 웃어주는 알바생 아니냐고 했을 정도. 오죽하면 중간에 그냥 튀어나갈 뻔 했다.

중반을 지나면서 조금씩 연극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발동이 너무 늦게 걸린 셈이다. 배우들의 과장된 몸짓에도 익숙해졌고, 스토리도 흥미를 끌기 시작한다. 뒷 쪽의 아줌마 관객은 여전히 거슬리지만, 역시 사람은 한 번 포기하면 익숙해지기는 하는가 보다. 후반 접어들면서 배우들은 온 몸을 다해 웃기기 시작했고 관객들도 종종 폭소를 터뜨리며 반응하기 시작했다. 과장된 몸짓, 엉뚱한 대사, 반복되는 액션… 이래도 안 웃을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배우들의 열연이 절정에 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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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뉴보잉보잉 미니홈피 http://www.cyworld.com/boeing


뉴보잉보잉은, 세 여자와 동시에 바람을 피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세 명 다 서로 다른 항공사에 근무하는 스튜어디스. 비행 스케줄에 따라 매일 다른 그녀들을 만나던 남자 주인공 집에, 백수인 친구가 찾아 오고 비행 스케줄이 엉망으로 꼬인 여자 친구들이 예정에 없이 찾아 오면서 좌충우돌 웃기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초반 관객들의 발동이 너무 늦게 걸린다. 관객들을 살살 끌어들이면서 같이 웃어야 하는 것이 소극장 연극의 최대 장점일 텐데, 초반엔 배우들만 너무 열심이고 관객들은 진짜 구경만 한다. 배우들은 그 분위기에 익숙해 있을지 모르겠으나 관객들은 그렇지 않다. 관객들이 빨리 익숙해지고 같이 호흡해야 배우들도 더 재미있을 텐데… 이건 관객들의 몫이 아니다. 스탭과 배우들이 해야 할 일인 걸. 중반 지나 후반 접어들면서는 지루함을 잊고 재미 있으니 연극 자체가 아주 재미 없는 건 아니지만, 초반 조금 더 빨리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어떨까.

그랬음에도, 연극이란 거부하기 힘든 매력이 있는 미디어다. 소극장에서나 즐길 수 있는 생생함, 땀방울까지 다 보이는 배우들의 열연, 이런 건 소극장이 아니면 즐기기 어려운 것들이다. 여기에, 미리 조금만 알아보고 갔으면 어땠을까. 어떤 일을 할 때 아무런 준비 없이 해 보는 것도 특별한 매력이 있기는 하다. 우연히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 예상치 못한 일들도 즐거운 법이지만, 사람에게는 항상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조금 더 준비하고 챙겨가면, 훨씬 더 많은 감동이 있는 건 틀림 없는 일일게다. 올해는 더 가기 힘들겠지만, 내년엔 조금 더 많은 연극을 경험할 수 있기를.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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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뱀파이어다. 첫 눈에 본 한 여자를 사랑했다. 그 여자는 내 운명이라 믿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난 그 여자를 뱀파이어로 만들 생각은 없다. 영원하다는 것은, 한편으론 두려운 일이므로.
나는 인간 여자다. 첫 눈에 빠진 뱀파이어를 사랑했다. 그를 사랑한 만큼 영원히 함께 하고 싶다. 그는 거부하지만, 난 이미 준비가 됐다. 언젠간 언젠간 그가 나를 뱀파이어로 만들어 줄 것이다.

트와일라잇. 예고편만 봤을 땐 뱀파이어가 나오는 판타지라고 생각했다. 그 왜, 뱀파이어는 악하고, 인간은 선하다. 악한 뱀파이어를 제거하기 위해 인간들은 무력에서는 약하지만, 사랑으로 단결해 승리한다는 뭐 그런 스토리 말이다.

전반부를 볼 때만 해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어랏, 갈수록 예상을 뒤엎는다. 한 여자를 사랑한 뱀파이어, 뱀파이어를 사랑한 한 여자. 뱀파이어 가족들은 그 여자를 받아들이고, 가족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그 여자를 노리는 또 다른 뱀파이어 무리들. 그 한 여자를 지키기 위해 뱀파이어들이 서로 싸운다. 어라? 이거 러브 스토리야??

요즘 케이블TV XTM에서는 문라이트라는 뱀파이어 미드를 방영한다. 착한 뱀파이어가 탐정으로 나와 인간을 괴롭히는 악당들(심지어 그것이 같은 뱀파이어라 할지라도)을 무찌른다. 그리고 한 여자를 사랑한다. 그 여자를 사랑하기에 인간이 되었다가, 다시 그 여자를 구하기 위해 뱀파이어로 변한다. 여자는, 언젠가 자기도 뱀파이어가 되어야겠지 라는 생각에 두려워하나, 뱀파이어는 정작 그 여자를 뱀파이어로 만들고 싶지 않다.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잡았지만, 트와일라잇과 문라이트는, 영원한 사랑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한 평생을 살면서도 한 사람만 사랑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영원한 삶을 살면서 과연 하나의 사랑을 지킬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인간 여자는, 영원함에 대한 애착을 보이나 영원함을 겪고 있는 뱀파이어는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사랑에 주저할 수 밖에 없다.

솔직히 영화는 기대에 못 미쳤다. 그럴 수 밖에. 뱀파이어 얘기를 예상하고 갔는데 러브 스토리라니. 황당하지만 여운은 남았다. 영원을 선택할 것인가, 불꽃같은 순간을 선택할 것인가. 어차피 순간을 선택해야 하는 인간에게 사랑은 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트와일라잇, 별 쓸 데 없는 고민을 하게 만든다. 젠장, 그냥 뱀파이어 영화였으면 이런 고민은 필요 없었을 것인데.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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