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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며 사는 삶'에 해당되는 글 32건

  1. 2008/08/13 생일 선물 (14)
  2. 2008/07/04 독수리 오형제, 사람을 찾습니다 (10)
  3. 2008/05/26 잠실, 편안하고 여유로운 일상 (6)
  4. 2008/03/28 그 때 그 TV를 아시나요, TV의 추억 (18)
  5. 2008/03/19 엄지손가락이 하는 일 (17)
  6. 2008/03/17 꿀타래, 떡볶이로 체감한 물가 인상 (6)
  7. 2008/03/17 아버지의 칠순 (8)
  8. 2008/03/07 딸 아이의 생일 선물 (13)
  9. 2008/01/30 가문의 영광?! - 블코 인터뷰에 뜨다 (23)
  10. 2008/01/02 2008, 이젠 정말 떠오르는 삶을 살자 (12)
  11. 2007/11/28 갓 태어난 구피 13마리 (15)
  12. 2007/11/05 다시 쓰는 구인 광고 (151)
  13. 2007/10/27 서울의 단풍 #3 - 송파 (5)
  14. 2007/10/26 서울의 단풍 #2 - 잠실 (7)
  15. 2007/10/24 서울의 단풍 #1 - 올림픽공원 (5)
  16. 2007/10/18 돌 위에 핀 꽃 (10)
  17. 2007/09/30 추석, 맛있는 음식 그리고 추억 (10)
  18. 2007/08/25 남자들의 로망 - 탈출 (12)
  19. 2007/08/20 이제 더 이상 사랑하지 말자 (20)
  20. 2007/08/16 어쩜 이런 것까지 닮았을까 ^^ (14)
  21. 2007/06/02 내면의 질서 (3)
  22. 2007/05/31 여름의 시작 (4)
  23. 2007/05/20 선생님도 너희들을 사랑한단다 (5)
  24. 2007/05/02 민들레 홀씨 되어 (2)
  25. 2007/04/26 라일락 꽃향기 맡으며 (6)
  26. 2007/04/11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4)
  27. 2007/03/19 봄이 오는 소리 (2)
  28. 2007/03/09 2호선 성내역 지하철 고장으로 삼십분간 운행 정지 (1)
  29. 2007/01/11 제브라 - 섬세함에 대하여 (2)
  30. 2007/01/06 비처럼 눈이 오는 날 - 사무실에서 (1)

생일 선물

사랑하며 사는 삶 2008/08/13 16:52 Posted by '레이'
열 살 되던 날 아침은 아무런 기억이 없고, 스무 살 되던 날 아침은 해방감에 가득차 있었다. 서른 살 되던 날 아침은 죽기보다 눈 뜨기 싫었고, 마흔 살 되던 날 아침엔 그냥 죽은 듯 누워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마흔 하나. 숫자만 놓고 보면 정말 생각하기도 끔찍한 나이가 됐다. ^^

얼마 전에 휴대폰을 바꾸면서 2년 약정을 맺었다. 그 논리로 따지면 나는 2년마다 휴대폰을 새로 바꾸게 될 테니, 여든 살까지 내가 쓸 수 있는 핸드폰은 겨우 스무 개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에 태어나는 그 많은 핸드폰 중에 내가 쓸 수 있는 건 겨우 스무개라니. 살 때마다 무조건 제일 마음에 드는 핸드폰을 사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난 앞으로 겨우 스무 개 밖에 더 못 산다는 말이다!

숫자로 따지면 참 마음이 아프지만, 여전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렇게 마음이 뿌듯할 데가 없다. 그것이 다 나이를 먹어왔기 때문에, 지금 이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면, 나이 먹는 일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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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딸 아이가 직접 만들어준 마우스용 손목 받침대. 비록 저작권 위반인데다가, 군데 군데 서툰 바느질이 삐져 나와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이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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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트로 만들어준 미니 쿠션. 가위에 베고 바늘에 찔린 작은 상처들이 손가락에 있길래, 뭘 유난스레 만들다가 저랬을꼬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빠 선물 만드느라 그랬다는 걸 알고는 가슴이 먹먹해서 잠시 동안은 멍하니 있어야 했다. 게다가 덩치만 컸지, 아직은 천상 애다. 꼭 회사 가져가서 쓰라고, 문자까지 날리는 걸 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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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최고의 파트너인 짠이아빠님 직접 골라온 워터맨. 남들은 몽블랑을 더 좋아한다지만, 사실 나는 다소 거만하게 느껴지는 몽블랑의 디자인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얄싸하면서도 세련미가 넘치는 워터맨의 느낌이란. 애지중지하턴 워터맨을 잃어버리고 한 동안 만년필 없이 살아오던 내게 가슴 짜릿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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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함께 일하는 식구들이 불붙여준 케이크. 한 살이라도 줄여주려는 사무실 막내 토양이님의 마음씨가 고맙다. 게다가 초 하나는 쑥 눌러 마치 서른 하나처럼 보이게 만들어준 편집장님의 센스엔 저절로 환호가! 퇴근 무렵 나눠 먹은 블루베리 치즈 케이크가 생각보다 너무 부드러워 남김 없이 먹었더니, 저녁에 밥이 반 공기 밖에 안 들어가더라.

이 외에 미처 사진을 찍지 못헀지만, 주일학교 학생들이 붙여준 케이크도 있었다. 소리 소리 지르며 노래를 불러 선생님을 창피하게 만들었지만, 나는 이 녀석들이 새삼 자랑스럽다. 그리고 현금으로 후원한 우리 가족들. ^^ 그리고 또.

마흔 하나의 생일. 마음으로 축하를 보내준 모든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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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써 놓고도, 참 뜬금없는 제목이네 싶은 생각이 다 듭니다. '독수리 오형제'와 '사람을 찾습니다'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소수정예를 고집하던 우리 회사에서 버티다 버티다 못해 이제 사람을 한 명 더 뽑기로 했습니다. 다섯 번째 멤버이니 005호인 셈이지요. 우리 회사는 대빵부터 순서대로(많이 먹는 순서 대로, 나이든 순서 대로, 배 나온 순서 대로… 사실은 입사 순서지만요) 001, 002, 003, 004라고 부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다섯 번째 멤버에게는 005라는 호칭이 붙지요. 이 호칭이 재미있어서 그런지, 7번째로 입사하겠다는 사람들은 꽤 있습니다. 하지만 7번은 이미 찜되어 있어요. 누군지는 비밀!

005호를 뽑는다고 소문이 나서 그런지, 남들이 외려 우리한테 이제 그러면 독수리 오형제 되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하, 독수리 오형제라니… 이건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별명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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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브레인은 큰 회사는 아닙니다(사실 큰 회사가 되고픈 생각도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돈을 많이 주는 회사도 아닙니다(그러나 조만간 그렇게 될 것을 진심으로 소망하는 회사입니다). 대기업처럼 뽀대나는 회사도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회사들 중 하나라는 것 만큼은 확실합니다. 블로그 비즈니스에 대해서도 확실히 알 수 있는 회사입니다.

이런 우리 회사에서 뽑는 005호는 콘텐츠 디자이너입니다. 이렇게 채용 직종을 어렵게 해 놓으면 진짜 사람 뽑기 어렵다는 거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지만,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냥 콘텐츠 디자이너라고 하기로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블로그 콘텐츠를 이쁘게 디자인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웹 디자인이나 편집 디자인하셨던 분들 모두 지원하실 수 있는 분야입니다. 블로그에 노출된 콘텐츠를 보기 좋고, 읽기 좋게 만드는 것, 이것이 005호가 해야 할 일인 것이지요. 그러나 블로그의 특성을 좀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기왕이면 블로그를 잘 아시는 분이기를 바라는 거고요.

자세한 모집 요강과 지원 절차는 회사 공식 블로그에 나와 있으니, 혹시라도 지원할 의사가 있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005호가 어서 합류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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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취업 정보. 컨텐츠 디자이너

    Tracked from Gamsa.net  삭제

    정확히 뭘 해야하는지는 모르지만, 제가 아는 정말 가족 같은 회사이자, 좋은 분들이 꾸려가는 회사입니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회사기도 하고요. 웹디자인, 편집디자인 경험하신 분들은 환영. 코드명 005호 입니다. 독수리 오형제, 사람을 찾습니다 - 레이토피아 미디어브레인 콘텐츠 디자이너 모집 안내 - 미디어 브레인

    2008/07/04 23:10
잠실은 사무실 위치로는 아주 그만이다. 지하철 2, 8호선 잠실역이 있어 지하철 타고 어디든 가기 좋고, 강남, 여의도 방면으로 가는 버스도 흔하다. 게다가 롯데월드, 마트, 백화점이라는 엄청난 상가가 있어 생활하는데도 편리하고 교보문고라는 엄청난 자원이 있어 글 쓰는 우리들에게는 아주 유용하다. 그 뿐인가. 차를 타고 조금만 움직이면 강변CGV든, 메가박스든 영화 한 편 감상하기에도 편하고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뮤지컬 전용 극장인 샤롯데가 있어 뮤지컬 맘마미아를 즐기는 호사스러움도 맛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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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지하, 롯데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맛집이라고 할 건 없어도 점심 한 끼 해결하기엔 문제없는 식당들이 널려 있고 차를 타고 나가면 방이동, 신천 등에 산재한 송파의 맛집들을 손쉽게 찾아낼 수 있다. 하긴, 그렇다 해도 점심에 뭐 먹을까 고민하기는 다 마찬가지지만 ^^ 게다가 사무실이 위치한 건물도 덩치가 꽤 큰 탓에 손님들 찾기도 쉽고, 보안이 좀 까다롭다는 것 외에 주차하기도 그리 어렵지 않으니 사무실 입지로 이만한 곳 찾기도 어려울 게다. 그래서일까, 앞으로 회사 규모가 더 커져도, 우리는 잠실을 떠날 생각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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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피시아이로 찍은 필름 한 롤을 스캔했다. 사무실 주변, 점심 식사를 하러 나가는 길에 간간히 담았던 이미지들이다. 맨 눈으로 보기엔 별 거 아닌 거리들인데, 피시아이로 보는 세상은 참 묘하다. 그리고 시차를 두고 볼 수 밖에 없는 필름의 매력. 찍을 때와 현상했을 때의 느낌은 또 전혀 다르다. 보는 시각만 달라도 세상이 이리 달라지는 걸… 너무도 맘에 드는 사무실 일상과 피시아이의 어안렌즈가 은은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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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추억은 항상 아름다운 법이어서 그런 것일까. 옛날 것이라면 그저 정이 가는 것은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얼마 전 우연히 신문에서 발견한 옛날 TV 사진. 그 사진이 나를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회상 블로깅에 빠져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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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의 TV를 더듬어 찾게 한 바로 신문에 실린 그 TV 사진

해당 신문에 따르면 이 TV는 LG전자가 만든 최초의 흑백 텔레비전이란다. 내가 이 사진에 주목한 이유는 이 한 장의 흑백 TV 사진이 내 유년의 TV를 강하게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내 유년의 TV는 다리가 달렸고 양쪽으로 각각 자바라식의 문이 달린, 장식장형 텔레비전이다.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에 있던 TV였는데 단지 문이 달려있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기억나는 것이 없다. 이 TV를 기억하는 이유는, 아마도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었던 나이의 아버지께서 내게 TV를 보여주지 않으시려고 장난삼아 문을 닫았다 열었다 했기 때문일게다. 아버지가 닫았으면 가서 열면 될 것을, 나는 왜 그리 울었던 것일까. 그런데 영악한 나는, 세 살 터울 동생에게 똑같은 장난을 하면서 놀았다. 아버지처럼 텔레비전 문을 닫고, 그렇게 동생을 울렸던 것이다.

사실 블로깅을 하면서 어떻게든 내 유년의 TV 사진을 구해보려고 애를 썼는데, 정작 그 사진은 못 구하고, 그 때 당시 광고 동영상을 구해(!)버렸다. 이런 행운이!

과거를 추억하는 것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다.
금성사의 옛날 광고가 우리를 즐겁게 한다.

최초의 방송은 1961년, 최초의 국산 TV는 1966년

궁금해서 자료를 좀 찾았더니, 우리나라에서 TV 방송이 시작된 것은 KBS가 개국한 1961년 12월이란다. 당시에는 국산 TV가 없어 모두 외산 TV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등장한 최초의 국산TV는 1966년 LG전자가 만든 VD-191로 판매 가격은 68,350원. 당시 쌀 한 가마니 가격이 2,500원이었으니(지금은 쌀 한 가마니가 약 16만원 정도) 이를 쌀 값을 기준으로 단순하게 지금 가격으로 환산하면 약 4백 - 5백만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비싼 가격이었는데도 TV를 사려는 사람이 많아 KBS에서 공개 추첨을 해 TV 공급 순서를 결정하기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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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등장한 최초의 국산 TV VD-191

그래도 어쨌든 서울에 살았고, 어릴 때 부터 TV가 있었던 까닭에 남의 집에서, 혹은 가게 집에서 동전을 내고 TV를 얻어보던 기억이 내게는 없다. 세월이 흐르면서 TV도 변하기 시작했고 장난기 많은 내 손을 타면서 자르륵 소리를 내며 닫히던 TV장의 문도 어느 틈에 고장나 버렸다.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 당시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집은 서울 시내에서 외곽으로 멀리 이사를 하게 됐고 그러면서 고장난 TV 대신 새 TV를 사게 됐다. 아마도 70년대 후반일테다. 그런데 그 TV, 새로 산 TV가 옛날 TV보다 훨씬 작았다.

아마도 디자인 트렌드가 바뀌어 나무 장식장을 벗어버렸기 때문일게다. TV는 네모 반듯해졌고 다리 따위는 없어져 버렸다. 드륵 드륵 돌아가던 로터리 채널의 촉감이라니. 지금처럼 리모콘으로 손쉽게 채널을 돌릴 수 없었던 탓에 누군가는 항상 채널 심부름을 해야 했고, 채널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TV 앞에 앉아 채널 손잡이를 지키고 있어야 했다. 보고 싶은 채널을 찾아 손잡이를 드륵드륵 돌리던 기억이라니...

그런데 참 묘한 일이 생겼다. 뭔가 일을 하시면서 TV를 보시려고 어머니가 TV를 돌려 놓으셨는데 이게 아마 자리가 모자라서 어딘가에 살짝 걸쳤던 모양이다. 방에서 가만히 놀던 내가 난데없이 TV를 주먹으로 쳤다. 도대체 왜 그랬는지 지금의 나로서도 이해할 수 없다. 아마 TV에서 격투를 연상하는 장면이 나와서 그럤던 것일까, TV 속 주인공이 미웠던 것일까. 아슬 아슬 걸려있던 TV는 콘센트가 뽑히면서 여지 없이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그리고 그 날 나는 정말 원없이 두들겨 맞았다.

컬러 TV 시대의 개발, 1981년

심하게 고장나지 않았거나 아니면 어떻게든 고쳐썼던지 그 흑백 TV를 보면서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중학교를 다니게 됐다. 그리고 그 해 12월, 전국적으로 컬러 방송 시대가 열렸다.

내가 알기로 우리나라는 이미 1970년대 초반에 컬러 TV를 조립하는 기술을 확보했었다. 그런데도 국내에서는 컬러 방송이 나오지도 않았고 컬러 TV 조차 국내 판매가 금지됐다. 당시의 군사 정권은 위화감이 생긴다는 이유 하나로 컬러 TV 방송의 보급을 금지시켰다는데, 그 때는 어땠는지 몰라도 시대가 지나고 나니 참 어이 없는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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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가 최초로 개발한 컬러 TV CT-808. 19인치 모델로 1977년에 발표됐다.

이런 사실들이야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된 것이고, 어쨌든 컬러 방송이 시작되고 TV 대리점에서 눈부시듯 선명한 컬러 TV를 보고 난 이후 나는 부모님께 컬러 TV를 사달라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게다가 막 바람이 불기 시작한 프로야구에 한참 빠져있던 나로서는 야구장에도 자주 못 가는데, 컬러 TV로라도 야구를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졸라대기 시작했던 것. 내 생떼가 통했던지, 아니면 부모님도 컬러 TV에 대한 욕구가 있었던지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봄, 드디어 우리 집에도 컬러 TV가 들어왔다. 어느 토요일 오후, 학교 마치고 집에 온 나는 묘한 웃음을 짓는 부모님을 이상히 여기며 방문을 열었는데 거기에 컬러 TV가 얌전히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TV화면에 나온 것은 프로야구 중계. 눈부시도록 빨간 유니폼을 입은 해태 타이거즈 선수와 초록빛 야구장의 기억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Gold Star라는 글자가 뚜렷하게도 박혀 있던 그 TV는 그때까지 내가 봤던 그 어떤 TV보다도 세련된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놀랄 만한 것은 리모콘이 있었다는 것이다. 네모난 은색 리모콘에는 아무런 디자인도 없이 채널이 바로 배열되어 있었는데 리모콘으로 채널이 바뀌는 것이 너무나 신기해서 TV좀 가만 놔두라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어야 했다. 리모콘이 등장하면서 TV도 로터리 방식에서 버튼 방식으로 바뀌었다.

내 기억으론 컬러 TV가 등장한 이후 TV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리지 않았나 싶다. LG전자 역사관에 따르면 1981년에서 1983년 사이에 총 87종의 모델을 내놓았다고 했을 정도니, 그야 말로 자고 나면 새로운 기능의 TV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였을 게다. 서라운드니, 하이파이니, 음성다중이니, VCR 일체형이니 하는 TV와 관련된 어려운 용어들은 아마 죄다 그 때 나왔을 것이다. 그러면서 TV 화면의 크기도 점점 빠른 속도로 커졌다.

29인치 초대형(!) TV의 등장, 1990년대 초

초창기 컬러 TV를 10년 정도 쯤 쓴 후, 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무렵 어머니는 한 번의 대형 사고를 치셨다. 당시로서는 초대형 29인치 TV를 구입하신 것이다. 브라운관 아래 가운데 부분에 GoldStar 마크가 붙어 있던 검정색 커다란 TV CNR 시리즈. 게다가 브라운관 위쪽으로 커다란 우퍼 스피커까지 붙어 있었다. 정확한 가격을 듣지는 못했지만 아마 100만원 가량 거금을 투자하신 것이 틀림 없었다.

29인치 TV를 처음 본 순간 정말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드라마에선 배우들 얼굴의 점도 다 보였고, 도대체 TV를 보는 것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을 정도였다. 국내 최초로 돌비 프로로직 서라운드 음향을 채용했다는 이 LG전자의 이 TV는 화질과 함께 사운드도 기존 TV와는 차원이 달랐다. 커다란 TV가 등장하면서 거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컴포넌트 오디오 세트는 찬밥이 됐고, 결국 내방으로 쫓겨났다.

이 TV를 3-4년 보다가 나는 결혼을 하게 됐다. 집에서 보던 크기가 있는데, 아무리 조그만 신혼 집이라고 해도 TV는 더 작은 것을 살 수 없었다. 돈이 모자라면 내가 보태겠다고 호기를 부렸고 - 결국은 보태지도 않았으면서 - TV 만큼은 큰 걸 사야 한다고 우겼다. 결국 고른 것은 집에서 보는 것과 같은 크기의 같은 모델. 그런데 값은 77만원. 아마 이 무렵부터 TV의 가격 인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좁은 신혼방 한 구석을 온통 차지한 TV. 그래도 신혼 초에는 비디오도 꽤 빌려보고 나름대로 TV를 꽤 즐기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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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동안 우리 가족의 친한 친구였던 GoldStar 29인치 TV

아이가 태어나고 생활은 바빠지고 그러면서 TV와는 멀어지고, TV는 점점 커 가는 아이의 차지가 되었다. 우리가 TV와 멀어지는 동안 TV는 더 발달해서 완전 평면을 거쳐 프로젝션 TV가 나오기 시작했다. 때마침 열풍이 불었던 찜질방에 가면 40인치, 50인치대 대형 프로젝션 TV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으니 이 때부터 초대형 TV가 등장했다고 봐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게다.

프로젝션을 거쳐 LCD, PDP의 시대로, 2000년

앞서도 잠깐 언급한 LG전자 사내 역사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벽걸이 TV가 본격적으로 출시된 건 1998년이다. 이 떄를 기점으로 얇고 선명한 고화질 TV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초대형 TV들은 프로젝션 TV가 옆에서 보면 잘 보이지 않는 점과 달리 어느 위치에서 보더라도 선명하다는 것이 장점으로 프로젝션 TV 시장을 빠른 속도로 잠식하기 시작했다. 가전 회사들의 인치 경쟁이 시작된 것도 이 무렵으로 LG전자는 1999년 5월에 64인치 벽걸이형 TV를 발표하게 된다. 이후 TV는 점점 커지고, 점점 더 얇아진다. 그리고 디자인도 점점 세련된 모습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우리 집 TV는 반대로 조금씩 그 수명을 다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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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출시된 엑스캔버스 토파즈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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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집에 있는 TV는 2008년 1월에 구입한 엑스캔버스 토파즈로 50인치 PDP다. 토파즈 구입과 설치에 대한 이야기는 팀블로그인 엑스캔버스 블로그에 적어 놓았으므로 혹시라도 궁금한 분들은 가서 읽어보기를. 문득 지난 추억에 젖어 내 기억 속의 TV를 뒤지다 보니 앞으로 이만큼 시간이 흐른 후 TV가 어떻게 변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TV 찾아 삼만리 - 리얼 TV 구입기

미래의 TV, 그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1966년 LG전자에서 국산 TV가 나온 이후 이제 42년이 흘렀는데 TV는 그때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변해버렸다. 이미 TV는 방송을 보여주는 것 외에 다양한 장비와 연결되어 다양한 콘텐츠를 보여주는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으 중심으로 자리 잡았고, 보여주는 것 외에 영상을 저장하고 다시 보여주는 새로운 기능들도 내장하게 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일어난 과학 기술의 발달을 감안하면 그보다 훨씬 더 짧은 시간에 TV는 빠르게 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화면의 크기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테고, 용도도 다양해져 수많은 정보를 표현하게 될 게다. 영화에서만 보던 터치 방식, 입체감을 실감하게 될 3D 가상 체험 등 TV는 보는 것에서 체험하는 것으로 탈바꿈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솔직히 TV의 모습을 예측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 안에 어떤 기능이 들어갈지 상상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결국 정보를 전달한다는 중요한 역할을 숙명으로 타고 태어난 TV가 모든 기기의 중심이 될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결국 TV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지금도 TV는 그렇게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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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손가락이 하는 일

사랑하며 사는 삶 2008/03/19 21:06 Posted by '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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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 손가락을 다쳤다. 다친 과정도 참 황당하다. 폴더형 휴대전화를 열어 내용을 확인하고 폴더를 닫는 순간 어느 부분이 그랬는지도 미처 깨닫기 전에 엄지 손가락 옆이 푹 베어버렸다. 내가 쓰는 휴대전화가 레이저라서 그런가, 하긴 광고에서는 축구공도 반쪽을 내버리던데 손가락 하나 베는 건 일도 아니겠다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휴대전화를 들고 봐도 손가락을 베어버릴 만한 부분을 찾지 못했다. 그러데 나는 손을 벴다. 이건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새벽 녘에 손을 베었는데 아침이 될 때까지 피가 멎지 않아 은근히 걱정도 됐다. 하지만  물이 닿지 않게 꽁꽁 싸매고, 약을 열심히 발라준데다가 항염 효과가 있는 약까지 먹어댔더니 그나마도 빨리 아물었던 것 같다. 대신 만 하루가 넘도록 왼손을 제대로 씻지 못해 찝찝함이 아주 끝장이다.

나는 왼손잡이는 아니지만, 왼손과 오른손을 거의 비슷하게 쓰는 이른바 양손잡이인 까닭에 왼손을 다친 여파가 만만치가 않다. 평소에는 엄지 손가락이 무엇에 쓰이나 별로 관심도 없었는데 정작 다쳐 놓으니 엄지 손가락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깨닫게 됐다.

엄지 손가락을 제대로 쓰지 못해 가장 불편한 건, 바로 옷 입을 때다. 절대적으로 단추 끼우는 일은 엄지 손가락 몫이다. 엄지 손가락 없이 단추 끼우는 건 거의 노동이다. 거기에 양말을 신고, 속옷을 입고, 바지를 올리는 과정에서도 엄지 손가락이 아주 주도적인 일을 한다.

라이터를 켜는 일도 쥐약이고 - 난 담배를 피지 않지만, 사무실에 아로마 램프를 켜느라 가끔 라이터를 쓴다 - 병 뚜껑 따는 일도 만만치 않다 - 이건 내가 병 뚜껑을 왼손으로 따기 때문이다 -. 아무 생각 없이 힘줘서 병을 따다가 아물어 가는 상처를 건드려 또 피가 배어나왔다.

사람이건 다른 생물이건, 아니면 또 어떤 요소건... 거기에 있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일게다. 그런데 사람들은 옆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존재하는 이유를 무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주 편하고 쉽게 대할 수 있기 때문에 정작 그 역할을 잊는 일,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보지만, 난데없이 엄지손가락에 미안함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지금, 엄지 손가락이 어여 낫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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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주말에 외출을 했습니다. 황사가 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봄인데, 집안에만 있기가 너무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모처럼 시내 구경 좀 하고, 저녁에는 신당동에서 떡볶이를 먹기로 했습니다. 오늘 코스는 삼청동 길 -> 삼청각 들러서 잠깐 구경하고 운현궁 -> 인사동을 거쳐 신당동으로 가도록 잡았고요.

삼청동 길 입구는 사람과 차들이 정말 많았네요. 데이트 나온 사람들로 거리가 북적북적, 도로 양쪽에는 뺵빽하니 주차해 놓은 차들로 차 지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드라이브 코스라서 길 막혀 천천히 지났지만 그리 기분이 나쁘지는 않더군요. 길 거리에 늘어선 카페와 미술관, 그리고 사람들... 그렇게 삼청동 길을 들어서 삼청터널을 지나 삼청각에 들렀습니다.

비싼 음식 값, 주차요금 때문인지 ^^ 삼청각에는 그렇게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여유있게 주차를 하고, 사진 몇 컷 찍고, 바람 좀 쐬고 인사동으로 이동했지요. 낙원상가에서 인사동 쪽으로 우회전하자마자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길 건너 운현궁으로 향했습니다. 운현궁은 사실 별로 볼 건 없습니다만 왠지 아늑하고 조용해서 제가 가끔 찾는 곳입니다. 마루에 걸터 앉아 조용히 앉아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기도 하고요, 비라도 오는 날이면 아주 기분이 그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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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하고 고요한 운현궁. 비라도 오는 날이면 아주 운치있는 곳입니다

운현궁을 들러 인사동을 한 바퀴 돌아 내려왔습니다. 인사동 가면 명물이 여러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꿀타래입니다. 꿀 덩어리를 손으로 국수를 뽑듯 1만 6천 가닥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박수가 나올 정도지요. 딸 아이가 워낙 재미있어해서 인사동 가면 빠지지 않고 들르는 코스입니다. 그러데 꿀타래에도 변화가 있네요. 하나는 값이 올랐다는 거고, 하나는 경쟁 업체가 생겼다는 겁니다. 원래 하던 집에서 안국동 쪽으로 좀 올라가다 보면 한 집 더 생겼더라고요. 원래 경쟁이 생기면 가격이 내려가는 법일텐데, 젠장, 4천원 짜리 꿀타래가 5천원으로 올랐습니다. 20%나! 딸 아이가 다른 것에 욕심 내는 통에 오늘은 꿀타래 패스. 그리고 신당동으로 옮겼습니다.

동대문운동장에서 신당역 쪽으로 가다가 사거리 조금 못 미쳐 있는 소방서를 끼고 우회전해서 들어가면 떡볶이 타운이 나옵니다. 타운 입구에 있는 마복림 할머니 집이 오늘의 목표죠. 신당동 자주 가는 선수들은 그 집 안 간다고 하지만 일단 주차를 해주기 때문에 저희는 그 집을 즐겨 찾는 편입니다. 주말 저녁이라 사람 정말 많더군요. 잠시 기다려 자리를 잡고 떡볶이 3인분을 시켰습니다. 잠시 후 떡볶이가 왔고 이 집은 선불이라 돈을 내야 하는데 뭔가 이상합니다. 예전에는 3인분 9,900원이어서 만 원 짜리 한장이면 충분했는데, 1만2천원이라는군요. 역시 20%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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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분 9,900원짜리 떡볶이가 1만2천원으로 올랐답니다 >.<

물가 오른다고 하는데 이렇게 하루에 몰아 당하니까 물가 오른 것이 정말 뼈저리게 실감나더라고요. 게다가 꿀타래든 떡볶이든 서민 상품임에 틀림없는데 이런 서민 상품들이 20%씩 쭉쭉 올라버리면 큰일 아닙니까.

게다가 저는 경유 차를 탑니다. 경유 차 타기 시작한지 2년쯤 되었는데 2년 전에는 리터당 1,100원대 였는데 지금은 1,500원대. 기름 값은 20% 정도가 아니네요. 물론 국제적으로 유가가 올라 그런 것도 있긴 하겠지만 여튼 인상 분이 장난 아닙니다. 저는 냅두고라도 경유 차는 트럭처럼 자영업 하시는 분들이 많이 타기 때문에 요금 인상은 서민 물가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서민 생활에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요소들이 계속해서 오르면, 조만간 서민 생활에 전체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은 경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겠지요. 어제, 3월 16일 방송된 개그콘서트 ’대화가 필요해’에서도 오르지 않는 건 월급과 아이 성적이라고 하는데, 여튼 생활 하기가 점점 더 팍팍해질 것 같아 걱정입니다. 이러다가 서민들 밥그릇 다 깨지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고요.

그나저나 국민들 밥그릇 지켜야 할 사람들이 요즘 자기들 밥그릇 지키느라 국민들 밥그릇은 깨지든 말든 관심도 없는 분위기니, 이거 참 더 큰일이군요. 하긴 언제 그 사람들이 국민들 밥그릇 걱정해 준 적도 없지만서도, 이렇게 무섭게 오르는 물가 때문에 우리네들 살림살이가 점점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그런 걱정을 해봅니다. 걱정 말고,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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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칠순

사랑하며 사는 삶 2008/03/17 01:32 Posted by '레이'
지난 토요일, 아버지의 칠순 잔치가 있었습니다. 사실 칠순 잔치라고 할 것도 없네요. 가족들과 친구 분 몇 분 정도 오셔서 식사하는 자리였으니 말입니다.

요즘은 잔치 잘 안한다고 하지만, 사실 칠순 잔치로는 고민을 좀 했더랬습니다. 여동생 결혼과 회갑이 겹치는 통에 회갑 잔치를 못하고 지내온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저로서는, 칠순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잔치를 해드리곘다고 마음 먹고 있었거든요. 회갑연 같은 걸 누가 하냐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안 할려고 했던 것과 다른 일 때문에 못했던 것은 또 차이가 있는 법이니까요.

그런데 정작 칠순 잔치를 하겠다고 했더니 아버지께서 스스로 반대를 하셨습니다. 요즘은 칠순 한다고 사람 모으면 욕 먹는다 뭐 이런 논리셨지요. 그래서 이런 저런 절충을 하다 보니 결국은 큰 집 식구들과 가까운 이웃 몇 분, 그리고 친구 분 몇 분 정도를 초대해 식사를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그래서 30명을 예약하는 걸로 칠순 준비는 끝났습니다.

그리고 바쁘다는 핑계로 별로 신경 못 쓰다가 드디어 칠순 날이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식구끼리만 식사를 한다고 해도 화환은 하나 있어야 할 것 같더군요. 마침 회사에서 나오는 경조사 비용을 돌려 화환을 하나 주문해 놨습니다. 인터넷 쇼핑이 발달하면서 화환 값도 내려갔더군요. 예전에는 12-3만원은 줘야 할 수 있는 화환을 7만원대에 해결했습니다. 뭐, 중국산 재료로 만들어서 싸졌다는 의견들도 있긴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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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날 아침 화환이 잘 배달되었다고 문자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조금 서둘러 예약한 부페 식당에 갔는데 화환이 없는 겁니다. 부랴부랴 꽃집에 전화하고, 식당에 물어봤더니 화환은 잘 도착했다는 겁니다. 어디에 있냐고 했더니 식당 지배인 쯤 되는 양반이 자랑스럽게 밑에 갔다 놨다는군요. 어디요? 하고 가봤더니 젠장, 또다른 칠순 집 자리에 떠억 가져다 놨더군요. 마침 칠순하는 집이 두 집이 있었는데 그 집은 100명 예약이고 저희는 30명 예약. 그러다 보니 칠순 인사말만 보고 그 집으로 가져다 놓은 모양이었습니다.

우리 쪽으로 옮겨 놓고 좀 황당했죠. 받는 사람 이름까지 명확하게 지정했는데, 그리고 식당에 사전 전화까지 해 놨었는데 이름도 확인하지 않고 칠순 잔치라니까 예약 규모가 큰 집으로 옮겨놨다니... 여튼 잘 뺏어 왔습니다. ^^

손님들 오시고, 그렇게 식사 자리가 이어지고, 모처럼 만난 친구분들과 아버지께선 적당히 소주를 즐기셨습니다. 엉겁결에 저도 두어잔 받아 먹고... 그렇게 잔치는 조촐하게 끝이 났습니다. 손님들을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가족들은 모두 아버지께 큰 절을 올리는 걸로 칠순이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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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이 해드리고 싶었는데, 이렇게 지나고 나니 참 서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지금껏 잔 병 치레도 한 번 안 하시고 건강하게 살아 오신 아버지께 고마운 마음도 들고요. 저 예전에 건강검진 했는데, 그 때 제 생활 습관 얘기를 다 듣고 난 의사 선생님 왈, 그렇게 술 마시고도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건강한 신체를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라고 하더라고요.

아버지. 베풀어 주신 만큼 갚아도 시원찮을 판에, 아직도 제게 베풀어주시기만 하시지요. 못난 아들, 해드릴 것도 없으면서 그냥 건강하시기만을 바라고 있네요. 부디 더욱 건강하시기를. 나이가 들면서 참 쑥쓰럽긴 하지만, 여기서라도 이렇게 말씀드리게 됐네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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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아이의 생일 선물

사랑하며 사는 삶 2008/03/07 11:52 Posted by '레이'
오늘 3월 7일은 딸 아이의 생일입니다. 지금까지 자라오면서 크게 아프지도 않고 말썽도 부리지 않고 잘 커주니 마냥 고마울 따름이죠. 아이가 자라고 별 탈 없이 생일을 맞는 건 좋은 일이긴 한데, 생일 때마다 아빠는 고민이 하나 생깁니다. 바로 선물 고르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해가 지나고 아이가 크면 클 수록, 선물 고르기가 정말 어려워 진다는 겁니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만 해도 이쁘게 생긴 장난감이면 마냥 오케이였는데, 서서히 고학년이 되니까 이젠 장난감으로는 도저히 안 먹히는 겁니다. 게다가 바라는 수준도 점점 올라가지요. 이번에 희망 선물 목록으로 제출한 건 강아지(!)와 휴대폰(!)이었습니다.

강아지는 아빠가 절대 싫어하니까 선물 불가입니다. 이건 딸 아이도 잘 알고 있으면서 괜히 내지른 겁니다. 게다가 맞벌이를 하는 집안 구조 상 집에서 절대 강아지를 키울 수 없습니다. 책임지지도 못할 일은 벌이면 안되는 거니까 강아지는 일단 희망사항일 뿐 현실이 될 수는 없는 일이지요.

휴대전화는 1년 전에 아는 분이 선물로 하나 줘서 지금까지 잘 썼습니다. 딱 초등학생한테 맞는 그런 모델이어서 액정도 작고, 몇 가지 좀 불편한 게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바꿔달라고 노래를 부르는데, 사실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에서 공짜폰 하나 구해주는 거 어렵지는 않습니다만, 아직 쓸만한 걸 버린다는 게 마음에 걸리더군요. 게다가 어쨌든 선물 받은 것이고, 좀 더 쓰게 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것도 패스.

일단 강력한 희망 사항 두 개를 무시(!)하고 가만 돌이켜 보니 장난감이나 팬시 학용품이 지금까지 대부분의 선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아빠가 사주는 장난감은 엄마가 사주는 장난감하고 좀 질이 다릅니다. 예를 들면 엄마는 전혀 사줄 생각을 못하는 무선 조종 자동차거나 전자 과학 블록 세트라거나 뭐 이런 것들을 사지요. 게다가 엄마는 어지간해서 손 떨려 못 사주는 팬시 학용품도 아빠는 비교적 잘 사줬습니다. 그러다 보니 딸 아이는 특이한 필기구 세트 같은 걸 몇 개 갖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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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젠 딸 아이의 관심사도 변하고, 팬시 학용품 밑천도 거의 떨어져 가고, 원하는 건 들어줄 생각이 없으니 선물을 고르기가 쉽지 않은 겁니다. 그래도 선물을 골라야 겠다는 의지로 문구점을 한 시간 서성거린 끝에 드디어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엄마는 절대로 생각 못할, 아빠니까 사줄 그런 선물을요.

선물을 사서 포장을 하고 딸 아이가 좋아할지 생각해 봅니다. 예전에는 제가 무엇을 고르던 딸 아이가 다 좋아했는데, 요즘은 좋아할지 어떨지 자신이 없습니다. 그만큼  아이가 컸고, 아빠는 아이의 생각과 멀어지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괜히 마음이 서운해 집니다. 이러다가 딸 아이가 선물 받고 시큰둥 하면, 참 마음에 상처가 되겠구나 그런 생각도 들더군요. ^^

새벽에 일어나 아이 머리 맡에 선물을 올려 놓았습니다. 아침에 부시시한 눈을 뜬 아이는 선물을 발견하고, 확인도 안 한 채 뽀뽀부터 날립니다. 그리고, 선물을 뜯습니다.

처음에는 선물이 뭐에 쓰는 건지 알지를 못해 어리벙벙해 합니다. 그러다가 아빠에게 설명을 듣고 직접 보작해 보고, 슬슬 입이 벌어집니다. 결국 학교 늦겠다고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고 나서야 선물에서 손을 떼고 씻으러 들어갑니다. 눈치를 보아 하니 다행히 선물이 마음에 드는 모양입니다.

이쯤하니 선물이 뭘까 궁금하시지요? 선물은 소형 ‘라벨 프린터’였습니다. 그 글자를 입력해서 인쇄 버튼을 누르면 테이프에 글자가 인쇄되어 나오는 뭐 그런 프린터 있잖습니까(특정 상품 홍보가 될 수 있는 이유로 ㅋㅋㅋㅋ 선물 사진은 공개하지 않습니다 - 사실은 사진을 못 찍었습니다. 후딱 포장해 버린 관계로 ㅋ). 이렇게 또 한 해 생일 선물 고민을 간신히 덜었습니다.

이러다가 중학교 가고 고등학교 가면 무엇보다도 현금이 가장 좋은 선물이 되겠지요. 그 때쯤 되면 선물 사러 다니는 고민은 안 해도 되겠지만, 선물을 고르고 포장하는 재미는 또 사라지겠네요.  살다 보면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이지만, 조금 머리 아프더라도 이런 재미를 있지 않고 살았으면 하는, 그런 소망을 가져 봅니다.

그나저나, 여러분은 아이들 생일 선물로 도대체 뭘 사주세요? 트랙백 걸어 주세요. 궁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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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블로그코리아(이하 블코^^)와 좋은 인연이 있고, 그래서 블코에 애착이 많은 편이기도 합니다. 뭐, 그렇다고 다른 메타블로그에 애착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도체, 이게 뭔 소리여!). 하여튼 이런 저런 인연이 있어서 블코와 잘 지냈는데, 어느 날 황송하게도 블코 인터뷰 요청이 오더군요.

처음에는 필로스님이 요청을 하셨는데, 인터뷰 뭐 이런 거에 나가는 게 익숙하지도 않을 뿐더러 괜히 창피하기도 하고 그래서 말로만 하겠다고 해 놓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지요. 미뤘다기 보다는 개겼다(!)고 하는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이런 저런 일로 블코와 술 자리도 몇 번 갖게 되고, 그러다가 송구하옵게도 블코의 이지선 사징님이 직접 인터뷰 요청을 하셨더랍니다. 뭐, 도저히 거절할 수도 없을 뿐더러, 이번에 응하지 않았다가는 술 자리에서 찍은 사진을 공개하겠다는 협박(!)을 받았던 터라 어쩔 수 없이^^ 부끄럽게도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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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쁘게 이미지도 만들어 주시고, 좋은 얘기만 나오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그나저나 술 취한 사진을 쓰겠다고 하시는 바람에 엉겁결에 낸 사진이지만, 아, 저 아래 사진에 나온 배는 도저히 어쩔 수가 없군요. >.<

별 내용도 없고, 보잘 것도 없는데 블코 인터뷰 실어주셔셔, 다시 한 번 '가문의 영광'임을 대외적으로 선포하며, 앞으로 블코에 좋은 일만 가득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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