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여행을 다녀오시겠다고 했다. 어디로 가시냐고 했더니 '파라호'란다. '파라오? 엄마 이집트 가? ㅋㅋ' 그렇게 웃어 넘겼다. 그리고 다음 날 어머니는 여행을 떠나셨고, 나는 강원도 화천으로 출장을 떠났다.
새벽 6시 서울을 떠나 화천에 도착하니 여덟시를 조금 넘겼다. 사실 중간에 휴게소에서 좀 들러 쉬면서 와야 할텐데, 국도로 달린 새벽길, 화천까지 오는 동안 어디 들어갈 만한 휴게소를 못 찾았다. 46번 국도의 끝에 있는 백운령 고개를 넘다가, 고개 정상에 있는 휴게소를 발견했지만, 여전히 문을 열지 않은 상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화천까지 쉼 없이 달렸다.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그 동안 난 혼자 여유가 좀 생겼다. 사람 많은 동네라면 밥이라도 먹을 텐데, 정말 조용한 시골이었다. 뭘 할래도, 할 게 없는 동네였던 것이다. 그런데 난데 없이 파로호라는 글자가 보였다. '파로호라니? 이게 엄마가 말하던 파라혼가?'
목적했던 마을을 지나쳐 차를 몰고 조금 더 들어가니 이게 웬걸. 그 도로는 호수 주변을 끼고 도는 나름대로 운치있는 드라이브 코스였다. 문제는 이른 아침이라 파로호가 이제 겨우 물 안개에서 깨어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물 안개 여파로 도로에도 안개가 끼었다는 것이다.
도로를 따라 돌다가 파로호 선착장이라는 표지를 발견했다. 살짝 얼어 있는 길, 핸들을 조심스럽게 돌려 주차장에 차를 댔다. 그리고, 이제 막 잠에서 깨는 파로호를 봤다.
사진도 못 찍으면서 얼마 전에 냅다지른 400D를 소중히 들고 다니는 내가 이런 장면을 놓칠 수는 없다. 그래서 일단 눌러대긴 했지만, 역시 눈으로 보이는 것과 카메라로 보는 건 다르다. 그리고 초보 DSLR 유저가 카메라로 표현하는 것도 보이는 것과 다르다. 다름의 벽을 느끼며 또 한 번 좌절한다.
차라리 꽁꽁 얼은 날이었으면 이런 느낌은 덜 했을 듯. 강원도의 바람은 차가왔지만, 그렇게 춥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느 틈에 차갑게 식은 손을 느끼기도 전에, 이미 내 400D에는 몇 장의 물 안개가 더 들어왔다.
가까이서 찍을 재주가 없던 선착장. 차를 돌려 선착장을 벗어나던 그 어느 구석에서 우연히 발견한 지점. 어느 틈에 선착장엔 물 안개가 걷히고 배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림 같던 배.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파로호 왔는데?' '아니 거길 어떻게 갔다니?' '거기라니?' '파로호 근처에 있는 펜션이 비싸서 평창으로 왔단다" '헉!'
예정에도 없던 어머니와 만남은 자연히 무산. 이른 아침 물 안개를 헤치고 노닥거리던 나의 시간도 끝났다. 전화가 울리고, 일행이 도착했다고 나를 부른다. '겨울의 시작'을 뒤로 해야 한다. 이제 출장은 시작됐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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