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7/05/28 한자말 바로 잡기 -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 2007/05/09 한자말 바로 잡기 - 의의 (9)
  3. 2007/05/01 초록불과 파란불 (5)
사람들이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것은 글이 말과는 다르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말을 글자로 적어 놓은 것이 글일 터인데, 글이 말에서 멀어져 말과는 아주 다른 질서를 가진다는 것은 매우 좋지 못한 현상이다. 더구나 말을 소리나는 대로 적게 되어 있는 한글로 쓰는 우리 글이 우리 말에서 멀리 떨어져 나가 있다면 아주 크게 잘못된 일이다.

이렇게 된 가장 뿌리 깊은 원인은 우리 조상들이 한문 글자를 써서 생각을 나타내고 한문이나 한자말을 써야 행세를 하도록 하는 사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오덕. 우리글 바로 쓰기 1. 28쪽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자말 바로 잡기를 쓰다 보면, '한자말도 우리 말인데 왜 쓰지 말자고 하는 것이냐'라고 얘기하는 분들이 있다. 그 분들에게 '왜 세상을 흑과 백으로만 보는가'라고 묻고 싶다. 이 책을 쓰신 이오덕 선생님은 물론 여기에 다시 풀어 쓰는 나도, 한자말을 쓰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한자말 중에 이미 우리 생활에 널리 쓰여 우리말로 된 낱말이 많이 있다. 그런 것들을 우리 말로 다시 고쳐 쓰는 것은 현실에도 맞지 않고 실제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어려운 한자말로 쓰지 않아도 되는 말들이 우리 주변엔 너무나 많다. 뜻도 알기 어렵고 한자로 쓰지 못하고 발음 하기도 어려운 그런 말을 대신할 좋은 우리 말이 얼마든지 있는데, 그 말을 쓰지 않고 한자말을 쓰는 것은 우리 말과 글을 스스로 포기하는 꼴이다. 그러니 어려운 한자말 대신 누구나 알고 있는 쉬운 우리 말로 쓰자는 것이다. 정말 부탁이건데, 매사를 흑과 백으로만 나눠 단정짓지 말고, 글에서 말하는 속뜻을 잘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한자말의 또 다른 문제점은 같은 말을 뱅뱅 돌려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오늘 살펴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이다.

또 그동안 침묵해왔던 중도파 초.재선 그룹도 집단행동을 하거나 아니면 각자의 판단에 따라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조선일보 2007년 5월 27일

이 문장은 아주 간단하게 고칠 수 있다.

또 그동안 침묵해왔던 중도파 초.재선 그룹도 집단행동을 하거나 아니면 각자의 판단에 따라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될 가능성도 있다.

혹은 이렇게 고쳐 보면 어떨까?

또 그동안 침묵해왔던 중도파 초.재선 그룹도 집단행동을 하거나 아니면 각자의 판단에 따라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될 수도 있다.

말을 뱅뱅 돌려서 어렵게 꼬아 놓은 한자말과 달리 얼마나 쉽고 간단한가. 물론 그럴 수도 있다는 얘기를 강조하기 위해서 한자말을 썼다고 말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강조하려면 '가능성이 높다'라고 표현하면 되지 굳이 배제라는 한자말을 쓸 이유는 없다고 생각되며 사실 이 말 자체가 강조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배제란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 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배제 -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물리쳐 제외함

이 뜻을 적용한다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말은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물리쳐 제외함'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이 무슨 복잡한 한자말 장난인가. 소위 말하는 이중부정일텐데, 이렇게 풀어 쓰는 나도 헷갈리기 시작할 정도다. 쉬운 우리 말이 있는데 왜 그리 한자말을 고집하는 것일까.

이래서 우리는 불행하게도 우리 말과는 다른 한자말 체계의 문장에 갇혀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옛날부터 글깨나 쓰는 사람들이 '문자 쓴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요즘도 이 문자 쓰는 글이 얼마나 많은가. 아니, 거의 모든 지식인, 학자, 문필가들의 글이 문자 쓰는 글로 되어 있다.

이오덕. 우리글 바로 쓰기 1.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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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말 바로 잡기 - 의의

우리글 바로 쓰기 2007/05/09 09:34 Posted by '레이'
입으로 말했을 때 그 뜻을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한자말이 많다. 본래 한자말은 민중들이 일하는 삶 속에서 생겨나고 쓰인 것이 아니라 양반이나 관리들, 학자들이 읽고 있는 글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상대편 얼굴도 보지 못하고 말을 하고 목소리만 들어야 할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전화로 말하고, 방송을 하고 방송 말을 듣는 경우가 그렇다. 이런 때일 수록 한자말을 쓰지 말고 순수한 우리 말을 써야 말글 생활을 바로 할 수 있다.

이오덕. 우리글 바로 쓰기 1. 23쪽.

우리 생활에선 별로 안 쓰지만, 글에서 많이 쓰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한 한자말들이 종종 있다. 대표적인 한자말이 '의의'다. 자, 원래 하던 대로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자.

의의04 (意義)
[ 의ː의/ 의ː이] 「명」
「1」말이나 글의 속뜻.
홍선이 성하의 말을 듣고 그 말의 의의를 알고….≪김동인, 운현궁의 봄≫

「2」어떤 사실이나 행위 따위가 갖는 중요성이나 가치.
역사적 의의/남북 정상 회담이 갖는 의의/의의가 있는 삶/이번 탐사는 세계 최초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3」『어』하나의 말이 가리키는 대상.

「4」『철』어떤 말이나 일, 행위 따위가 현실에 구체적으로 연관되면서 가지는 가치 내용.

「비」<1>의미02(意味)〔1〕.
「비」 <2>뜻〔3〕.
「비」<2>의미02〔3〕.

보통 이 의의란 말은 위 설명 2번에서처럼 '남북정상회담의 의의'와 같은 식으로 많이 쓰인다. 신문 기사나 혹은 논문 등에서도 많이 쓰는 낱말일테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이건 참 발음하기도 나쁜 낱말이다. 아주 천천히 발음해야 '의의' 혹은 '의이'라고 발음하지 보통은 '으의' '으이'라고 발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발음하기도 어렵고 낱말 자체도 어렵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 말은 '뜻'이란 말이다. '뜻'이란 좋은 우리 말을 놓고 굳이 발음하기도 어려운 말을 쓰는 것은 말과 글이 발달하는 방식과도 맞지 않는 희한한 일이다. 결국 글쓰는 사람들이, 많이 배운 사람들이 잘난척 하기 위해서 쓰다 보니 학교에서도 쓰게 되고 그러면서 웬지 그럴 듯한 문장을 쓸 때는 이 낱말을 써야 한다고 습관이 되어 버린 것이다.

요즘 논술 시험 때문에 학교에서도 글쓰기를 중요하게 가르치는데, 좋은 글이란 누가 읽어도 쉽게 알 수 있는 글이지 어려운 낱말로 가득찬 글이 절대 아니다. 쉬운 우리 말로 쉽게 쓰는 법을 가르치는 것, 이것이 제대로 된 글쓰기 가르침이다.

다시 '의의'로 돌아와서, 이 말은 간단히 뜻, 속뜻, 아니면 의미 같은 말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 다음 예를 들어 보자.

기념제는 사당 등 추모시설 조성과 함께 1968년 시작됐다. 이제 시대 추이에 맞는 즐거운 체험·관광축전으로 구성해 그 역사적 의의를 국민과 함께 되새기려 한다고... (조선일보 2007년 5월 8일)

사실 위 글도 군데 군데 한자말이 보인다. 계속 말하지만 한자말로 쓰인 글은 한자말 하나만 우리 말로 바꾼다고 해서 곧바로 쉬운 글이 되는 건 아니다. 말이란 참 묘해서 서로 얽히고 얽혀 있기 때문이다. 우리 말을 억지로 한자말로 꾸미려하면 더 이상한 글이 되어 버린다.

기념제는 사당 등 추모시설을 만들면서 1968년에 시작됐다. 이제 시대 흐름에 맞는 즐거운 체험, 관광 축전으로 구성해 그 역사의 뜻을(혹은 의미를) 국민과 함께 되새기려 한다고...

또 다른 예를 보자

극미량이어서 그런 문제점을 극복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조선일보 2007년 5월 8일)

아주 웃긴 말이 하나 또 나온다. 극미량이라니. '아주 적은 양이어서' 혹은 '아주 조금이기 때문에' 라고 쓴다면 어감이 달라 보이기 때문일까? 물론 그렇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한자말이 잘난 체 하기 위해 쓰였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뿐이다. 이 말은 아래와 같이 바꿀 수 있겠다.

아주 적기 때문에 그런 문제점을 극복했다는데 큰 이 있다.

사실 우리 말로 글을 쓰는 것은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라면서 한자말이 가득 섞인 어려운 글이 좋은 글이라고 배웠고, 또 주변에서 그렇게 쓰는 것에 익숙해져 왔다. 그런 까닭에 쉬운 우리 말로 글을 쓰는 버릇을 들이지 못한 것이다. 나부터도 조금씩 우리 말 쓰는 버릇을 들여가야 겠다는 생각, 블로그의 영향력이 점점 커져가는 요즘 더 간절해진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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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불과 파란불

우리글 바로 쓰기 2007/05/01 09:01 Posted by '레이'
나는 아직도 '파란 불'에 횡단보도를 건넌다. '파란불이다~ 가자~' 라고 말할 때마다 초등학교 4학년 딸 아이는 '아빠, 왜 초록불을 파란불이라고 해?'라고 따진다. 내가 봐도 틀림없이 초록불인데, 왜 난 여전히 파란불이라고 말하는 걸까.

가만히 생각하면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어릴 적 우리는 틀림없이 파란불이 켜지먼 건너라고 배웠다. 그 아무도 초록불이라고 하지 않았고 파란불이라고 했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일이었다. 왜 그 때는 초록불을 파란불이라고 하는데 아무도 따지지 않았을까.

'아빠 어릴 땐 그렇게 배웠어'라고 옹색한 변명을 해 보지만 딸 아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하긴 알아듣기 어려울 법도 하다. 세상에, 누가 초록불을 당당하게 파란불이라고 가르쳤단 말인가. 그 덕에 전 국민이 초록색을 느끼지 못하는 색맹에 거려 버리고 말으니. 교육이란 그래서 중요하고, 그래서 더 무서운 거다.

아마, 우리가 대학 시험을 볼 1987년 경부터 논술 시험이 생겼을 터이다. 논술에 대해 별도로 가르칠 방법이 없는 학교에서는 오로지 신문 사설 베껴 써오기를 열심히 시켰다. 신문사설을 오려 공책에 붙이고 그대로 한 번씩 베껴 써 가는 숙제를 지겹게도 해댔다. 물론 '그렇게 했기 때문에 네가 지금 글장이로 먹고 사는 거다' 우기면 할 말 없다. 그러나 정말 자신있게 말하건데 나는 신문사설 몇 개 베껴썼다고 해서 글 솜씨가 크게 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신문사설이란 죄다 한자말 투성이다. 사실 학교에서는 신문사설에 나오는 한자를 열심히 베껴 쓰라고 했던 기억도 난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니 그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었던가. 제대로 된 글짓기 교육을 받지 못했던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 한자말 투성이의 사설을 베껴 쓰고 그것이 논설의 모범 답안인양 가르쳤으니 그렇게 배운 수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글은 한자말 투성이의 글이라 생각할 수 밖에. 그래서 좀 배웠다 하는 사람들이 쓰는 글은 죄다 알아 먹기 어려운 한자말 투성이고 그렇게 써야만 대접받는 것처럼 여겨져 왔다.

사실 나는 언론에 별로 감정이 없지만 요즘 들어 계속 우리글을 바로 쓰는 법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언론이 우리 글을 망쳐 놓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글자 수가 제한되어 있다는 핑계로 제목에는 뜻도 모를 한자말들이 넘쳐나고 전문가들이 쓴 글은 어려운 말 투성이다. 솔직히 누구나 읽으라고 펴낸 신문을 그렇게 어렵게 써야 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우연히 초등학교 논술에 대한 책을 한 권 접하게 되었는데, 현직 교사가 썼다는 이 책에서 말과 글이 서로 어우러져야 한다는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아, 다행스럽게도 이제 우리 아이들은 한자말 가득한 신문사설을 모범 답안으로 여기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어디 책 한 권 가지고 세상이 바뀌겠는가. 하지만 그 책을 읽은 사람들, 그리고 우리 말과 글을 살려야 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열심히 글을 쓰고, 그 글을 퍼뜨리고, 그 글을 읽기 시작하면 반드시 우리 말과 글은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내고, 계속 간직할 것이다. 별 힘도 없고, 아는 것도 많지 않은 내가 굳이 이런 글을 쓰는 건, 거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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