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전집'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5/31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서서 (2)
  2. 2009/03/16 [독서일기] 파리대왕, 깊은 의미에 길을 잃다 (12)
  3. 2009/02/23 2009 책 읽기의 목표, 명작에 도전하다 (26)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읽다가 나는 문득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를 떠올렸다. 1991년 쯤 나왔을 이 책은, 음란성이 강하다는 이유로 판금 조치 된데다가 저자인 마광수 교수는 이듬해인가 구속까지 됐다. 운좋게도(!) 판금 되기 전에 책을 구해 놓은 친구 녀석 덕에 난 즐거운 사라를 읽을 수 있었는데, 읽고 난 후 내 소감은 이랬다. 이게 뭐?

팔팔한 이십대 청년에게 그런 정도로 굳이 사람을 잡아 넣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게다. 그러나 사실 내용이 평범한 건 아니었다. 행위 장면을 꽤 구체적으로 표현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으니까. 그러면서 아마 예술과 외설을 구분하는 기준이 뭐냐, 하면서 세상이 참 시끄러웠다. 지금은 판금에서 해제되어 살 수 있을까 하고 인터넷 교보문고를 검색했더니 품절이란다.

즐거운 사라가 예술인지 외설인지 나는 구분할 재주는 없고(솔직히 이런 건 읽는 사람이 구분해야지, 누가 읽어라 마라 할 것인가. 그러나 적어도 아는 것 한 가지는, 즐거운 사라는 사랑에 대한 책은 아니라는 거다), 요즘 읽고 있는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읽다가 문득 든 생각은, ‘외설은 행위에 집중하는데 비해 예술은 마음(또는 사랑)에 집중하는 것이 아닐까'였다. 뭐 이런 거다.



포르노나 속칭 야설 같은 것들 대부분이 스토리에는 별 관심이 없고 행위에만 집중하는 반면 명작이라고 부르는 책들은 출판 당시에는 비판을 받았을 지언정 어쨌든 행위 보다는 행위 전후를 중심으로 사람의 심리를 표현하는데 집중한다. 그리고 그 관계를 중심으로 사회상을 묘사하고, 당시의 현실을 비판한다. 사람들은 그 치밀한 심리 묘사에 감동하고, 그 심리를 통해 사회상에 대한 비판이든 애정이든, 글로 표현해낸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명작은 탄생하는 것일 게다. 흔히 우리는 그 심리를 사랑이라고 부른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 나타난 성애 장면 묘사는 꽤 구체적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행위의 묘사가 아닌, 심리의 묘사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작가는 정말 감탄할 수 밖에 없는 어휘로 표현해낸다. 게다가 내가 읽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 하나인 이 책은 꽤 매끄럽게 번역되어 읽는 도중 어색한 단어가 튀어나와 걸리적 거리는 느낌도 거의 없는 편이다.

오늘 아침 같이 일하는 토양양이 보내준 인터넷 포춘 쿠키를 깨 보니, ‘무한한 사랑만이 인생을 즐겁게 한다'는 메시지가 튀어 나왔다. 어떤 마음이 정말 사랑하는 것일까. 무한한 사랑이란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랑한다는 것으로 인해 우리가 얻을 수 있고 또 버려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제도와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굴레와 사랑의 자유로움은 결국 어디선가 충돌하고 마는 것 아닐까. 반복되는 질문과 대답으로 나는 사랑에 대해 길을 잃는다. 그러나 그 길을 안내할 사랑이 따로 있음을 나는, 여전히 믿고 있다. 코니도 언젠가는 그 길을 찾아낼 것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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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파리대왕. 몇 명의 아이들이 섬에 불시착해 살아가는 이른바 모험 소설이면서도 그 안에 인류의 삶에 대한 깊은 의미를 담고 있어 사실적인 설화 예술의 명쾌함과 현대의 인간 조건을 신비롭게 조명했다는 평가를 받은 소설.


짧은 한 줄로 파리대왕을 소개하기란 힘든 일이지만, 파리대왕 책 뒷 편에 수록된 작품 해설은 이 비슷한 내용으로 시작한다. 게다가 굳이 작품 해설을 빌지 않더라도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타이틀은 괜히 받는게 아니다. 그런데 이런 책을 작품 해설을 먼저 읽어 보고 전체 의미를 이해했다고 설친데다가 십오소년표류기와 비슷한 내용이니까 쉽게 읽을 수 있겠지, 하고 만만히 보고 덤빈게 일단 실수였다. 작품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안 것이 큰 도움이 된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나. 꽉 짜여진 소설 안에서 깊은 의미를 다시금 깨닫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 알다시피 파리대왕의 주인공들은 12세 이하의 소년들이다. 무인도에 불시착한 그들은 처음에는 ‘소라'로 대표되는 나름대로의 규칙을 세워가며 사회성을 발휘하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사냥’으로 대표되는 인간 내면의 야만성을 드러내고 질서를 깨뜨린 후, 힘으로 표현되는 새로운 질서를 세운다. 질서를 지켰을 때 특별한 혜택이 오지 않으면 그 질서를 쉽게 무너뜨리고 힘의 본능 대로 움직이는 것이 인간의 본성일까. 어린 소년들도 대표되는 인간의 본성이란 원래 이렇게도 나약하고, 잔인한 것일까. 파리대왕은 인간 본성에 대해 우울하고 서글픈 분위기를 내내 전달하고, 읽는 내내 마음을 가라앉게 만들었다.

번역을 가리켜 또 하나의 창작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번역은 힘든 고통의 작업일 수 밖에 없을 게다. 따라서 이렇게 수고스러운 번역에 대해 왈가왈부할 형편은 되지 못하나, 나름 한 가지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은 말해야겠다. 소설 내내 튀어나오는 낯선 한자말들. 고대, 산정, 권곡, 초호, 화경, 천개, 외경, 겁화, 무연 등등… 도대체 무슨 말인지 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말들이 중간 중간 튀어나와 읽는 리듬을 깨뜨렸다. 원작자가 번역하기 어려운 특별한 글자를 써서 우리로서도 잘 쓰지 않는 한자말로 번역할 수 밖에 없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런 류의 한자말 번역은 ‘오늘날에는 오늘의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오늘의 번역이 필요하다'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발간사와는 거리가 있는 번역이지 싶다.

여튼, 사람의 본성이 정말 악한 것일까.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렇다고 해야 할 듯 싶다. 하긴, 인간에게 있어 선이란 항상 주관적인 가치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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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아무런 걱정도, 부담도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내게 있어 가장 행복한 책 읽기 시절은 대학 다닐 때다. 미래에 대한 염려나 준비에도 신경 쓰지 않았고, 눈 앞에 닥친 수업 시간에도 개의치 않은 채 도서관 가장 후미진 자리에 앉아 앙드레 지드의 전원교향악, 좁은 문 등등을 읽어내려가던 그 때 그 시절만큼 행복하게 책을 읽었던 기억이 없다. 때마침 도서관에서 근로 장학생 자리까지 운좋게 받아낸 나는, 하루에도 몇 권인지 미처 세지도 않으면서 이런 저런 책들을 읽어가며 꽤 몽롱한 정신을 수습하지 못한 채 버스를 타고 집에 가던 기억이 아련하다.

그 때 내가 읽었던 대부분의 책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고등학교 때까지 읽지 못했던 명작 소설들이 대부분이었다. 앙드레 지드, 빅토르 위고, 플로베르, 에밀졸라를 시작으로(이건 당연히 전공하고도 관계가 있다 ^^) 헤르만 헤세, 어니스트 헤밍웨이, 도스토 예프스키, 톨스토이 그리고 조정래까지 나는 닥치는 대로 고전과 명작들을 읽어 냈고 아무래도 그 때의 책 읽기가 지금의 글 쓰기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나이를 먹고 어느 날인가, 그렇게 명작을 읽어대던 시절 낱권으로 구입했던 세계문학전집 중 한 권을 꺼낸 나는 채 열 페이지를 읽지도 못한 채 그 책을 덮어야만 했다.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조악한 글씨, 빽빽한 편집과 오래된 맞춤법, 게다가 나를 참을 수 없게 만든 일본식 번역의 흔적들(아쉽게도 우리가 읽은 수많은 명작들은 원작이 아닌 일본 번역서를 다시 번역한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 시대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겠지만)…

생각해보니 내가 읽었던 수많은 명작의 흔적에도 이런 기억들이 남아 있었다. 어릴 땐 모르고 읽었던 책들이 더 큰 활자와 시원한 편집, 깔끔하게 다듬어진 현대식 문체에 익숙해진 나에겐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존재로 다가온 것이다. 그리고 고전들은, 어릴 때 동화책으로 축약본을 읽거나, 수능 대비해서 어쩔 수 없이 읽는 책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게 명작을 잊고 지내던 얼마전, 눈에 번쩍 띄는 기사를 접했다. 민음사에서 세계문학전집 200권을 간행했다는 뉴스가 그것이다. 200권 발행 기념으로 디자인 에디션을 별도로 발표하기까지 했다는 뉴스를 보며(아, 사고 싶지만, 보관할 때가 없어서 포기했다는..), 당장에라도 서점에 달려 가고픈 욕심을 눌러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잠실의 한 서점에서 그 첫번째 책으로 '호밀밭의 파수꾼'을 골라 들고 있었다. 원래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사고 싶었는데 마침 서가에 없었다. 그래서 대타로 고른 것이 이 책.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된 비교적 최신작이라는 점도 이 책을 고르게 된 동기가 됐다. 아직까지 읽어본 적도 없었고.

민음사 셰계문학전집에 포함된 책들(화면 출처 : 민음사 홈페이지)


나는 새해가 되면 올해는 꼭 200권의 책을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하는데, 사실 1998년 이후로 이 목표는 한 번도 달성한 적이 없다. 적게는 몇 십권, 많게는 백 몇 십권 정도의 책을 읽는 것에 그치고 말았던 것이다. 숫자를 채워 보고 싶어서 맛의 달인 같은 만화책도 살짝 포함시켜 보긴 했지만 그건 왠지 좀 모양새가 안 나는 듯 해 200권에 포함시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맛의 달인이란 책이 우습다는 건 절대 아니다. 방대한 내용과 명쾌한 작가 의식, 진지한 스토리는 맛의 달인 101권을 읽고 그 후속타를 기다리게 만드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여튼, 올해 목표도 여전히 200권. 그런데 올해는 왠지 이 목표를 달성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이 200권이기도 하고, 이렇게 명확하게 한 권씩 사서 읽다 보면 목표가 더 눈에 잘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나는 두 권의 책을 읽었으니 시작이 좋은 편이다.

아련한 기억 속에 간직했던 이야기들, 아직 접해보지 못한 미지의 이야기들이 나를 기다린다. 읽은 책에 대해서는 일일이 독서 일기를 남길 생각이나, 그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닐 듯 해 장담은 못하지 싶다. 게다가 초등학교 6학년인 딸 아이도 한 번 읽어보겠다고 덤비고 있으니 부담도 만만찮다. 그런데, 기분은 참 그럴 듯 하다. 오랫만에 행복한 책 읽기에 빠져들고 있으니 말이다.

ps1> 읽기도 전에 책 200권을 어디다 쌓아두지? 라는 쓸데 없는 생각이 든다.
ps2> 솔직히 말하면 권당 5천원씩만 잡아도 100만원이다, 라는 생각도 빼 놓을 순 없었다.
ps3> 딸 아이가 아빠랑 똑같이 읽으면 컴퓨터(아이맥)를 사주겠다 했는데, 이건 또 어찌 수습할꼬. 여튼 대책없는 아빠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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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특별판

    Tracked from 김다희블로그  삭제

    세계문학전집 특별판 소개 민음사는 세계문학전집 발간 11주면 200권 돌파 기념으로 또 하나의 야심찬 기획을 독자들께 선보인다. 『거미여인의 키스』, 『햄릿』,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고도를 기다리며』,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변신ㆍ시골의사』, 『동물농장』, 『오만과 편견』, 『구운몽』, 『데미안』 등 독자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 10종을 뽑고 정병규, 안상수, 이상봉, 이돈태, 박훈규, 김한민, 슬기와 민, 박시영..

    2009/02/25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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