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모든 것이 변해가는 법이겠지만 - 이렇게 글을 시작하려니 나이가 아주 많이 든 것처럼 오버를 하고 있다는 >.< - 술 마시는 패턴도 꽤 많이 변해버렸다. 처음에는 맥주 한 두잔 겨우 마시던 것에서 폭탄주를 마시게 됐고, IMF를 겪으면서 소주 맛을 알게 됐고, 이런 저런 술 가리지 않는 비즈니스 현장의 경험도 했고... 그래도 결국 가장 좋은 술은 소주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걸 보면, 나도 틀림없는 대한민국 아저씨인가 보다.
소주를 좋아하고, 자주 마시기도 하지만, 요즘 내가 필이 꽂힌 술은 다름 아닌 청주다. 사실 몇 년 전에 청주를 좀 즐기기도 했는데, 사실 청주라는 술이 어디 쉽게 접할 만한 술인가. 게다가 청주를 대표하는 일본 사케는 우리나라에선 절대 싼 술이 아니다.
그런데 우연찮게 다시 청주를 접하게 됐다. 자주 가는 오뎅바에서 청하만 마시다가 - 이 집은 소주를 팔지 않는다 - 우연히 눈에 띄여 한 번 주문해 봤는데 생각보다 술이 괜찮은 거다. 값도 그렇게 부담스럽지도 않고. 오호라 잘 되었다 싶어 겨울 내내 들른 오뎅바에서는 꼭 이 술을 마셨다.
'오니고로시'라는 술이다. 우유팩처럼 생긴 곽 - 이 표현 얼마만에 써보는 것일까 ^^ -에 담긴 이 술은 생긴 것과는 달리 은은한 맛이 그만이다. 용량은 900ml이고 오뎅바에서 파는 가격은 2만 5천원이다. 100ml 당 2,777원으로 4,000원 짜리 청하에 비하면 두 배가 넘게 비싼 술이긴 하지만 그리 흔하게 먹는 술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정도 비용은 감수할 만하다.
알콜도수는 14.9도. 청하나 매취순 같은 술보다는 비슷하거나 조금 세다. 첫 맛은 쌀로 빚은 청주 답게 쌀 향기가 물씬 피어나고 중간 맛은 씁쓸함과 단 맛이 적당히 섞여 있다. 입을 약간 아리듯 떨어지는 끝 맛은 잔 맛이 남지 않고 개운하다. 순하고 부드러워 술을 잘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부담이 없다.
청주는 흔히 데워 먹는 술로 알고 있지만, 차게 먹는 맛도 무시 못한다. 따뜻한 청주가 은근히 속을 데우는 맛이 있다면 차가운 청주는 시원한 맛 뒤에 달아오르는 느낌을 즐길만 하다.
흔히 청주는 일본 술이라고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도 청주가 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면서 우리 술이 사라지고, 일본식 술 제조법이 보급되어 청주가 마치 일본 술인 것처럼 여겨지게 된 것이다.
실제로 우리 술은 밀이나 밀기울로 만든 누룩과 쌀로 죽이나 고두밥, 백설기 등을 만들어 물에 섞은 후 발효시킨 술에 고두밥과 물을 섞어 재차 발효시켜 만든다. 그 술을 맑게 뜨면 청주요, 청주를 걸러내지 않고 뜨면 탁주요, 청주를 뜨고 남은 술지게미를 거른 것이 막걸리다. / 허영만 식객 5 195쪽
그러나 아쉽게도 나는 기껏해야 막걸리나 동동주 정도를 먹었을 뿐 아직 우리 청주를 먹어보지 못했다. 여튼 조만간 기회가 되면 꼭 우리 청주를 한 번 찾아 마셔봐야 겠다.
일본 청주가 은은한 맛이 난다고 해 놓고, 난데없이 청주가 우리 술이네 어쩌네를 말하는 이유는 일본 청주도 저리 맛있는데 우리 청주는 얼마나 더 맛있을까 하는 그런 기대감 때문일게다. 기왕 술에 관련된 글을 쓰는 김에 조만간 우리 방식으로 담은 청주를 한 번 찾아서 꼭 마셔봐야겠다. 어떤 맛이 날까, 그저 심히 궁금하고 기대될 따름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 하는데... 글 마무리 하면서 참 별난 생각이 다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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