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파리대왕. 몇 명의 아이들이 섬에 불시착해 살아가는 이른바 모험 소설이면서도 그 안에 인류의 삶에 대한 깊은 의미를 담고 있어 사실적인 설화 예술의 명쾌함과 현대의 인간 조건을 신비롭게 조명했다는 평가를 받은 소설.
짧은 한 줄로 파리대왕을 소개하기란 힘든 일이지만, 파리대왕 책 뒷 편에 수록된 작품 해설은 이 비슷한 내용으로 시작한다. 게다가 굳이 작품 해설을 빌지 않더라도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타이틀은 괜히 받는게 아니다. 그런데 이런 책을 작품 해설을 먼저 읽어 보고 전체 의미를 이해했다고 설친데다가 십오소년표류기와 비슷한 내용이니까 쉽게 읽을 수 있겠지, 하고 만만히 보고 덤빈게 일단 실수였다. 작품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안 것이 큰 도움이 된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나. 꽉 짜여진 소설 안에서 깊은 의미를 다시금 깨닫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 알다시피 파리대왕의 주인공들은 12세 이하의 소년들이다. 무인도에 불시착한 그들은 처음에는 ‘소라'로 대표되는 나름대로의 규칙을 세워가며 사회성을 발휘하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사냥’으로 대표되는 인간 내면의 야만성을 드러내고 질서를 깨뜨린 후, 힘으로 표현되는 새로운 질서를 세운다. 질서를 지켰을 때 특별한 혜택이 오지 않으면 그 질서를 쉽게 무너뜨리고 힘의 본능 대로 움직이는 것이 인간의 본성일까. 어린 소년들도 대표되는 인간의 본성이란 원래 이렇게도 나약하고, 잔인한 것일까. 파리대왕은 인간 본성에 대해 우울하고 서글픈 분위기를 내내 전달하고, 읽는 내내 마음을 가라앉게 만들었다.
번역을 가리켜 또 하나의 창작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번역은 힘든 고통의 작업일 수 밖에 없을 게다. 따라서 이렇게 수고스러운 번역에 대해 왈가왈부할 형편은 되지 못하나, 나름 한 가지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은 말해야겠다. 소설 내내 튀어나오는 낯선 한자말들. 고대, 산정, 권곡, 초호, 화경, 천개, 외경, 겁화, 무연 등등… 도대체 무슨 말인지 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말들이 중간 중간 튀어나와 읽는 리듬을 깨뜨렸다. 원작자가 번역하기 어려운 특별한 글자를 써서 우리로서도 잘 쓰지 않는 한자말로 번역할 수 밖에 없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런 류의 한자말 번역은 ‘오늘날에는 오늘의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오늘의 번역이 필요하다'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발간사와는 거리가 있는 번역이지 싶다.
여튼, 사람의 본성이 정말 악한 것일까.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렇다고 해야 할 듯 싶다. 하긴, 인간에게 있어 선이란 항상 주관적인 가치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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